한국일보

[여성의창] 가장 훌륭한 교사

2023-03-12 (일) 김미혜(한울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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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릿 올릿 올릿, 칩 칩 칩, 윗 윗 윗’, 마치 옆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지저귀는 새소리에 놀랐다. 창가를 두리번거리며 새의 향방을 찾지만 동트기 전의 짙은 어둠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의식하지 못하던 것도 오롯이 자연의 울림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니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다.

사상가이자 철학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0)는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2년여 동안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월든’을 썼다. 그는 사람이 필요한 식량을 얻는 데 믿기 힘들 만큼 적은 노력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과 단순하게 식사하더라도 체력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로의 사상과 철학을 모두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삶의 핵심과 가치관은 적용할 만하다. 혼자 호숫가에서 살면 외롭지 않았을까? 이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저자는 ‘저 고독해 보이는 호수가 많은 벗을 가지고 있듯 자신도 그런 이유로 외롭지 않다’라고 말한다. 자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워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 준다. 자연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사’다.

숲속에 산 지 일주일이 채 안 되어 집 문간에서 호수까지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소로는 호수를 떠나온 뒤에도 그 길이 사람들에 의해 밟히고 뚜렷이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당연하게 ‘길’로 생각하는 이 길도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길을 만들기 위해서 앞서 걸어간 사람이 있었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또한 훗날 누군가가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 된다. 올봄에 아이와 함께 마당에 심은 과일과 채소 화분에 물을 주고 매일 얼마만큼 자랐는지 관찰하는 것이 아이의 일과가 되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시간을 내서 자급자족하는 밭을 만들면 좋겠다.


지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할 당시 영상에서 높게 솟은 나무에 빼곡히 앉은 수백 마리의 새 떼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영상을 보았다. 다가올 지진의 위협을 경고라도 하듯 새들은 울부짖었다. 동물은 환경의 변화가 감지되면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해 행동한다는데 과연 인간은 어떠한가. 지금까지는 인간이 오만한 태도로 자연을 정복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지구를 지탱해 주는 자연과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 때이다. 계절이 바뀌고 매번 자연이 우리에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인간이 선물로 받은 자연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훼손하고 있는 것에 이미 소로는 엄중한 경고를 내리고 있다.

200년의 세월이 흐른 이야기는 우리 생태계의 환경을 돌아봐야 하는 작금의 현실에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곳곳에 널려 있어서 그냥 밟고 지나가는 풀 한 포기도 다시 보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김미혜(한울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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