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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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생각 - 벽난로

2022-01-05 (수) 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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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적부터 동경해왔던 생활문화의 하나가 벽난로(Fire Place)다. 주로 서양영화 장면으로 봐선지, 자글자글 하는 불빛과 아늑한 분위기가 더 할 수 없이 그윽하고 로맨틱하게 여겨져서다.

그 소망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정작 그 문화의 본거지에 와서 살면서도 아직 벽난로와는 연이 안 닿았으니까. 그러던 차, 마침 딸이 이사한 집에 벽난로가 있다. 그러니 새벽마다 걷기 운동하는 내겐 신나는 일거리가 생겼다.

집 동네가 작은 놀이터와 가로수들이 많아 걷다보면 나뭇가지들이 무수히 길바닥에 나뒹군다. 그것들을 갖고 오면 딸이 가져가서 벽난로에 때게끔.
딸이 미안한지 “엄마 힘들게 그만해. 그런데 신기하게 소나무를 넣으면 집안에 솔향기가 나서 좋아.” 지난번 놀러온 8살짜리 조카까지 벽난로에서 좋은 냄새가 나온다고 하더라나.


옛날사람들이 아궁이에 불을 땔 땐, 산의 소나무들이 자진해 가지치기한 솔가지들을 최고로 알고 태웠다더니 다 이유가 있던 거였다. 다시금 우리 선조들의 혜안(慧眼)을 재확인 했다. 딸은 땔나무를 살 거고 비싸지도 않으니까 엄마는 걱정 말고 그만 나르란다. 그래서 내가 털어놓았다.

“사실은 엄마가 집안에 벽난로가 있는 게 꿈이었어. 그런데 네가 대신 벽난로를 즐기니 너무 좋아” 딸이 웃더니, 자긴 집에 수영장이 있는 걸 꿈꿔서 다음엔 꼭 풀장이 있는 집을 살 거란다.

나는 모닥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낭만의 연속으로, 직접 보지도 못한, 영화로만 접한, 벽난로를 막연히 꿈꿔왔다. 하지만 딸은 어릴 때 친구 집 풀에서 수영하며 다짐했다니, 엄마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꿈을 야무지게 꿔왔던 셈이다.

30년의 세대차이와 문화의 차이구나 싶어 미소가 나온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홀가분하게 산책을 못하고, 옛적 나무꾼마냥 한 짐(?)갖고 왔다. ‘전설 따라 삼천리’의 얘기를 상기하면서 말이다.

‘옛날 앓아누운 가난한 어머니가 한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효자 아들이 하얀 겨울 산을 다 헤집어 딸기를 구해와 쾌차했다는...’그러니 딸을 향한 이 정도의 수고로움이야 일도 아니다. 내겐 그저 딸과 지구를 위한 ‘소확행’일 뿐이니까.

<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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