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눈이 참 많이 내렸다. 폭설이었다.
뉴욕은 사계절이 아름답지만, 눈 내린 나뭇가지에 피어난 눈꽃을 볼 수 있는 겨울도 참 아름다웠다.
겨울동안 낭만적인 기분에 젖어 눈 내리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하고, 음악에 빠져 있기도 했고, 시를 써 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눈 치우는 일은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더욱이 기온이 내려가면서 도로에 쌓인 눈은 얼어붙었고, 사고를 막기 위해 눈을 걷어내야 하는 작업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교통은 마비되었고, 일상은 불편함 속에서 견뎌야 했다.
낭만이 주는 아름다움과 현실이 주는 버거움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몇 해 전, 캘리포니아를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들과 꽃들이었다.
뉴욕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물이 넉넉하지 않을 텐데도 야래향 잎은 윤기를 잃지 않았고, 흰 꽃은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자연 속에서 생명은 반드시 풍요로운 조건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환경과 기온이 다른 곳으로의 이동은 늘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몇 가지 식물을 가져와 키워 보기로했다.
겨울이 되면서 화분에 분갈이를 하고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겨울 내내 새잎을 밀어 올리며 자꾸만 자랐다.
화분 속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며 계절의 변화에도 잘 견뎌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선인장을 닮은 식물은 작은 가지 하나였을 뿐인데, 물에 담가 두자 길게 뿌리를 내렸고, 화분에 옮겨 심자 마침내 꽃을 피웠다.
생명은 그저 신비스럽게 잘 자라고 있었다. 자연은 낯선 환경에서도 살아내는 것만으로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봄볕이 화창한 날, 모종을 사다 심으며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들도 함께 뒤뜰에 심어주었다.
각자의 시간을 품은 채 새로운 땅에 자리를 잡아가는 식물들은 가을까지 잘 자라주었다.
재작년에 피었던 포인세티아를 땅에 심었다가 늦가을에 다시 화분에 옮겨 들인 적이 있는데, 크리스마스를 지나서야 붉게 꽃을 피웠다. 가장 화려해야 할 시간을 지나 피어난 꽃은 오히려 더 수줍고 여려 보였다.
제때를 놓친 아름다움도 이렇게 여린 소녀처럼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꽃 앞에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용과 나무에서 잘라 온 가시 돋친 줄기 역시 물속에서 뿌리를 내렸다.
한 계절이 지나 다시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자 망설임이 생겼다.
뿌리를 내린 이 생명들을 다시 땅에 심어야 할지, 계속 집 안에 두어야 할지….
뉴욕의 3월은 여전히 매서운데, 따뜻한 곳에서 온 식물들에게 이곳의 추위는 아직도 감당하기 녹록지 않은 혹독함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 따뜻해지고 더 포근해지는 봄날을 기다린다.
창가에서 햇볕을 받던 화분을 들여다보다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줄기 아래에서 하얀 뿌리를 발견했다.
그 순간, 봄이 보였다.
이 작은 생명들이 살아오던 기온과 시간을 헤아리며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지켜보고 싶다.
긴 추위는 동면했던 많은 생명들을 깨우고, 탄탄하게 버텨 온 뿌리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갈 때 봄을 알리기 시작한다.
창가에 따뜻한 봄볕이 내려앉고, 흙은 점점 온기를 전해주고 있다.
꽃보다 먼저 뿌리가 살짝 몸을 드러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