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글”

2026-03-20 (금) 07:58:23 임형빈/한미충효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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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총각인 나는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난 그날도 평소처럼 집 앞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는데 그만 시속 80km를 달리는 차를 못보고 차와 부딪쳐 중상을 입었다. 난 응급실에 실려 갔고,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오는 동시에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시력을 잃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실에 너무 절망했고 결국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면서 나는 아홉 살 밖에 안 되는 소녀를 만났다.

“아저씨! 아저씨는 여기 왜 왔어?” “꼬마야 귀찮으니까 저기 가서 놀아라”“아저씨! 왜 그렇게 눈에 붕대를 감고 있어! 꼭 미라 같다”


그녀와 나는 같은 301호실을 쓰고 있는 병실 환자였다. “아저씨 그러지 말고 나랑 친구해. 알았죠? 난 정혜야 오정혜” 다음날 “아저씨! 근데 아저씬 왜 한숨만 푹푹셔?” “정혜라고 했니! 너도 하루아침에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해봐라 생각만 해도 무섭지, 그래서 아저씬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숨을 크게 내쉬는 거란다.

너는 무슨 병 때문에 왔는데?” “음 그건 비밀.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곧 나을 거라고 했어, 이젠 한달 뒤면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 없다고. 한 달 뒤면 나보고 싶어도 못보니까 이렇게 한숨만 쉬지 말고 나랑 놀아줘”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한마디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 후로 난 그녀와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나의 눈이 되어 저녁마다 산책을 했고 꼬마 아이가 쓴다고 믿기에는 놀라운 어휘로 주위사람, 풍경 얘기 등을 들려주었다.

“근데 정혜는 꿈이 뭐야?” “응 아저씨랑 결혼하는 것” 그러나 그녀와 헤어짐은 빨리 찾아왔다. 그 후 나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녀는 울면서 “아저씨 나도 퇴원할 때 되면 꼭 와야 해 알겠지?”

우는 그녀는 볼 수는 없었지만 가느다란 새끼 손 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따르릉 따르릉 “최호섭씨?” “예 제가 최호섭입니다” “축하합니다 안구 기증이 들어 왔어요” “진짜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하늘로 날아갈 듯 했다. 일주일 후 난 이식수술을 받고 3일 후에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난 너무도 감사한 나머지 병원 측에 감사편지를 썼다.

그리고 나가서 기증자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던 중 난 그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기증자는 다름 아닌 정혜였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바로 내가 퇴원 일주일 뒤가 정혜의 수술일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백혈병 말기 환자였던 것이다.

난 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가 건강하다고만 믿었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부모님이라도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많이 좋아했어요, 아이가 수술하는 날 많이 찾았는데$” 정혜의 어머니는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정혜가 저 세상에 가면 꼭 눈을 아저씨에게 주고 싶다고. 그리고 꼭 아저씨에게 이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어요” 또박또박 적은 편지에는 아홉 살짜리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아저씨 나 정혜야. 이제 수술실에 들어간다. 아저씨 내가 만일 하늘로 가면 나 아저씨 눈 할게. 그래서 영원히 아저씨랑 같이 살게. 아저씨랑 결혼 못하니까” 나의 눈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임형빈/한미충효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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