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과 가까운 후배가 지난여름 한국에 간 길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60살, 남성, 흡연과 음주, 스트레스 … 건강에 적신호가 올만한 조건이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결과가 생각보다 나빴다. 동맥경화로 혈관이 막힐 위험이 높다는 경고였다. 그의 친구인 의사는 평소 느긋한 타입인데, 이번만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며 겁을 주었다고 한다.
‘동맥경화’ 하면 떠오르는 것은 협심증, 심근경색, 뇌경색, 뇌출혈 등 가슴 철렁한 질환들. 당장 콜레스테롤 많은 음식을 피하고 술을 줄이며 담배를 딱 끊어야 한다. 흡연은 혈관을 수축시키므로 특히 위험하다. 답은 나와 있으니 실천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게 쉽지가 않다. 스트레스 받으면 저도 모르게 입에 담배가 물리고 손에 술잔이 잡히곤 한다. 오랜 세월 몸에 박힌 습관의 조화이다.
사회에도 오랜 세월 이어져온 생활양식, 습관들이 있다. 기후위기가 닥치니 이들 관습 혹은 집단적 습관이 걸림돌이 된다. 전 지구적 기후재앙이라는 경고가 나왔고,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 시급하다는 처방이 나왔는데 실행이 지지부진하다. 머리와 행동 사이에 구습과 이해들이 끼어드는 탓이다.
지금 세계의 이슈는 ‘기후’이다. 로마에서 G20 기후정상회의가 열렸고, 바로 이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Conference of the Parties)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성과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한다. 여러 합의들이 나오고 있지만 완벽하지 않다. 구멍 뚫린 합의들이다.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조달을 중단하겠다면서 ‘해외’로 못을 박는 식이다. 자국 내 프로젝트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에는 표면장력이 있다.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걷는 것은 수면의 강고한 저항력 덕분이다. 곤충 중에는 이를 뚫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알을 낳는 종류가 있다. 나방 비슷한 날도래의 암컷은 온힘을 다해 표면장력을 뚫어낸다. 그렇게 해야 종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관련해 우리는 지금 문제의식의 수면 언저리에 있는 것 같다. 후손의 생존을 위해서는 의식의 표면장력을 뚫고 문제의 핵심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도 머뭇거리는 모양새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 모순된 행동들이 나온다.
기후대책 회의의 핵심 의제는 온실가스 감축이다. 그런데 이를 논의하자고 모인 글로벌 리더들이 줄줄이 개인제트기를 타고 나타났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비행기 한번 뜨고 내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지 그들은 의식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탄소중립 실현하겠다는 행사에 개인제트기 400여대가 몰려들었다.
특히 비판이 쏟아진 인사는 바이든 대통령. G20 회의 직전 그는 교황을 방문했는데 무려 85대의 자동차 행렬이 로마거리를 누볐다. 이어 그는 대통령 전용기로 글래스고로 갔고, 대통령 전용 리무진, 헬리콥터, 수행차량들은 특별 수송기로 옮겨졌다. 미국대통령이 해외순방 중 하던 관행대로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환경운동 단체들의 비판은 따가웠다. 얼마 전 바이든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고 했다가 석유시장 불안정으로 미국 개스값이 오르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석유증산을 요구해 모순된 행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인간 활동에 의한 지구온난화의 기점은 산업혁명이다. 이후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소비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대량생산 시대는 물질만능주의를 몰고 왔고, 그 안에서 우리는 소유와 소비에 집중하도록 길들여졌다. 생산 제조 수송 유통의 매 순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그렇게 2세기 반, 지구는 병이 들었다. 경제성장은 환경을 제물로 삼는다.
후손들에게 살만한 환경을 물려주려면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시대 이전 대비 섭씨 1.5도, 그게 안 되면 2도를 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국제적 합의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간 1인당 평균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2톤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 UN 보고서에 의하면 2018년 기준 글로벌 평균은 5톤, 미국인 평균은 15톤이다. 세계 소득상위 1%의 평균 배출량은 70톤, 억만장자들의 배출량은 수천 톤에 달한다. 탄소배출은 돈에 비례한다. 가진 만큼 환경에 짓는 죄가 크다.
COP26 회의에서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녹색산업혁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빌 게이츠의 연간 CO2 배출량은 7,500톤. 개인제트기로 전 세계를 다니고 여러 대의 제트기와 헬리콥터, 23대 주차공간의 대저택, 각지의 별장 등 소유가 많으니 탄소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더 이상은 살던 대로 살면 안 되는 때가 되었다. 육식 좋아하고, 생각없이 마구 사들이고,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를 타며, 덥지도 않은데 에어컨을 펑펑 트는 등 우리에게는 버릴 습관들이 너무나 많다. 이들 습관을 끊어내는 것이 기후대책의 시작이다.
아울러 유권자로서, 소비자로서 힘을 결집할 때이다. 기후대응 태도를 기준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고, 구매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집단행동이 정책을 바꾸고 산업을 바꿀 물꼬를 틀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이 행성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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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