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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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자녀들

2023-10-20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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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지가 반색을 하며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자축할 일이 있다고 했다.

“아들이 드디어 집을 나갔어요. 지난주에 아파트 구해서 이사했어요.”

30대 중반인 그의 아들은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에서 잘 나가는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북가주 본사 부근에서 살며 한달에 절반은 타 도시로 출장을 가곤 하다가 3년 전 팬데믹으로 모든 게 멈추고 재택근무를 하게 되자 남가주의 부모 집으로 들어왔다. 10여년 떨어져 살던 아들이 돌아오면 반가울 법도 한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반가운 건 잠깐, 조용하고 한갓지던 집안이 갑자기 번잡스러워져서 내 집 같지가 않다고 했다.


“뉴욕, 런던… 세계 각지 지사와 거래처 사람들과 통화를 하다 보니 밤낮이 없어요. 거실에서 한밤중까지 일하다 새벽에 제 방에 들어가서 자는데, 아침에 나와 보면 먹다 남은 음식, 그대로 둔 접시며 물병, 간식 봉지들이 사방에 널려있어요. 삼시 세끼 챙겨주랴, 어질러놓은 거 치우랴 … 일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에요.”

게다가 아들이 거실에서 일을 하니 방해될까봐 전화도 마음대로 못 받고, 걸음도 살금살금 걸으며 시집살이가 따로 없는 생활을 했다고 그는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방이라며 홀가분해했다.

2020년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정지되면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젊은이들이 대거 부모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해 미국에서는 18~29세 젊은이들 중 거의 50%가 부모 집으로 들어갔다. 대공황 이래 최대 규모이다. 팬데믹으로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직장을 잃었거나, 빠듯한 재정에 돈을 좀 절약하려고, 혹은 재택근무라 어디서 거주하든 상관없어서… 청년들은 부모 집으로 들어갔다. 일명 부메랑 자녀들이다.

이후 팬데믹 방역조치들이 풀리고 경제가 원상복귀하면서 상당수는 다시 집을 나가 독립했지만 1/3은 여전히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다. 연방 센서스국에 따르면 18~29세 연령집단 중 거의 45%인 2,300만명이 현재 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

18살만 되면 대학을 가든 직장을 잡든 집에서 나가 따로 사는 게 당연시 되던 미국에서 근년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렌트비, 수만달러에 달하는 학자금융자 상환 부담, 인플레이션, 불안정한 취업시장 등 Z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맞고 있는 경제적 현실이 상당히 팍팍하기 때문이다. 특히 렌트비는 2020년부터 계속 올라 지난 8월 현재 전국 중간가가 2,052달러나 된다. 미국 역사상 이렇게 집세가 비싼 적은 없다. 웬만큼 월급 받아서는 그달 그달 렌트비 내기도 버거운 게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부메랑 자녀’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팬데믹과 경기침체를 거치면서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에서는 ‘전업자녀’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주춤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자 젊은이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업하느라 애쓰고 적은 봉급으로 사느라 고생하는 대신 부모 집에서 집안일 돕고 용돈 받으며 만년 ‘자녀’로 편안하게 사는 젊은이들을 전업자녀라고 한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에 따라 형제 없이 혼자 자라며 ‘샤오황띠(小皇帝)’로 대접 받는 데 익숙한 청년들, 자녀라면 벌벌 떠는 부모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미국, 한국, 유럽 등 어디서나 아이들이 과보호 속에 자라면서 성인이 된 후 강인한 면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한인사회에도 부메랑 자녀들이 꽤 눈에 뜨인다. 자녀들 대학 가면서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렸던 부모들은 이제 비좁은 둥지 증후군에 시달린다. 자녀들 떠난 후 부모들은 적응기간을 거치며 진화한 것이다. 텅 빈 집안의 적막함과 공허함에서 벗어나 부부끼리의 오붓하고 한갓진 삶을 즐기게 되었다. 그 공간에 갑자기 성인자녀가 들어오니 부모들은 다시 적응의 어려움에 부딪쳤다. 자녀가 자주 방문하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성인자녀는 각자 독립된 개체로 살면서 이따금씩 만나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기는 해도 자녀가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한창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나이에 오죽하면 부모 밑으로 들어왔겠는가.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 수도 있고, 일이 잘 안 풀려 좌절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외로움이 깊을 수도 있으며, 다른 정신적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그 고단함, 아픔, 상처를 부모 곁에서 치유하고 싶어 왔다면 부모는 품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모든 건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들/딸이 언제까지나 같이 살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집을 나가 독립한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같이 사는 동안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으로 삼는다면 느닷없는 ‘부메랑’은 의미가 있다.

단, 최소한 룸메이트로서의 책임과 예의는 다 하도록 단단히 못을 박는 것은 필요하다. 생활비는 얼마나 낼지, 집안일은 얼마나 거들지… 사전 합의를 하는 것이다.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만드는 훈련과정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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