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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떠난 자리

2021-10-26 (화) 장아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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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무브투헤븐(Move to Heaven)’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유품정리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고독하게 떠나갔거나 사연이 있어 가족이 그 떠난 자리를 정리하지 못 할때 대신 해주는 직업이었다. 가족조차 해주지 못한 마무리를 고귀하게 해나가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남는 드라마였다.

나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유품 정리를 한국 방문 때마다 해왔다. 병이 급격히 악화되셔서 신변 정리를 하실 겨를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방대한 양의 유품을 남기셨고, 끝도 없을 것 같던 정리는 지난 여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정리를 하며 과감히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오래된 화장품, 쩐내 나는 립스틱, 기워 신은 양말들, 미국에서 사다 쟁여놓으시고 오래되어 종이와 붙어버린 아이보리 비누... 이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유품들은 많은 갈등을 겪게 했다. 특히 너무나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이 수백장, 아니 수천장 있는 듯했다. 넘쳐나는 사진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소장해야할 지 구분하는데 족히 며칠을 보낸 것 같다. 사진 외에도 어머니의 신분증, 일기장, 가계부 이런 것들은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난 여름 친정아버지께서 집을 줄여 이사를 가셨기 때문에 어머니가 80년대초 큰 맘먹고 장만하셨던 자개농을 결국 처분했다. 그것들이 안방에서 나가 트럭에 실리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훔치시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사람이 떠나가듯 ‘잘 가게’ 하셨다.


나는 이 유품 정리 과정을 통해 어머니를 생각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뜻깊은 시간도 가졌으나 한편 좀 다른 각오를 하게 되었다. ‘내 사진을 버려야 하는 남은 가족들을 생각해서 적당히 남기되 평소에 과감히 버리며 지내야겠다. 그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 두고 살자. 감사와 사랑의 메시지를 곳곳에 남기자 등...’

나는 20대에 미국으로 시집 오면서 룰루랄라 뒤도 안돌아보고 신났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앞으로 자주 못보는데 괜찮겠냐고 하셨었다. 이번 마지막 정리 때 나온 어머니의 일기 속에 ‘우리 막내 아라 보고싶다 보고싶다...’ 시 처럼 적힌 글을 보며 목 놓아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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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라씨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전공한 언니들을 뒤이어 첼로를 전공했다. 한국에서 오케스트라와 솔로 앙상블 연주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후 미국에서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는 첼로를 가르치며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장아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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