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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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스타일의 서스펜스 스릴러를 가미한 전쟁 스파이 영화

2021-09-17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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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인공의 관점에서 이야기 전개

▶ 부부간의 사랑·믿음을 깊이있게 다뤄

공포영화를 잘 만드는 일본의 키요시 쿠로사와 감독의 첫 시대극으로 인내심이 필요하게 진행이 느리지만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보는 사람의 관심을 잡아 끌어당기는 히치콕 스타일의 서스펜스 스릴러요 멜로드라마이자 전쟁 스파이 영화다. 전쟁 스파이 영화이면서도 스파이 액션 모험을 강조하기보다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부부가 겪는 정신적 고뇌와 갈등 그리고 부부간의 사랑과 성실과 믿음과 진실 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특히 주인공 여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인은 남편의 비밀에 싸인 행적과 행동을 간파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는데 영화는 끝이 나기 직전까지 제목처럼 남편이 과연 진짜 첩자인지 아닌지 깨닫기 힘들도록 알쏭달쏭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향수 감 짙은 영화로 너무나 차분하게 연출을 해 본격적인 스파이 영화의 강한 서스펜스 스릴을 감지하기는 힘드나 거의 충격적이요 허전하고 비감한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이런 아쉬움이 많이 해결된다.

1940년 고베. 부유한 비단상인 유사쿠 후쿠하라(이세이 타카하시)는 서양식의 개방된 평화주의자로 신사복에 위스키를 즐기는 멋쟁이. 곧 닥쳐올 전쟁의 기운을 감지하고 있는 그의 아름다운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는 아마추어 배우로 온순한 전형적인 부인 스타일의 여자. 그러나 사토코는 지성과 능력과 독립심이 강한 여자로 다만 이 것들이 내면에서 휴면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고베에 사토코의 어릴 적 친구로 규칙에 얽매인 군국주의자 타이지(마사히로 히가시데)가 헌병사령관으로 파견된다. 그리고 타이지는 후쿠하라의 서양식 생활 스타일을 비판한다. 타이지는 후쿠하라가 스파이로 몰려 체포된 영국인 친구를 보석금을 대납한 뒤 피난시키면서 그를 요주의 인물로 꼽고 사토코에게 이를 경고한다. 타이지가 사토코에게 연모의 감을 품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후쿠하라가 조카 후미오(료토 반도)와 함께 만주로 출장을 갔다가 예정보다 늦게 돌아오는데 이로부터 얼마 후 타이지는 사토코에게 남편이 귀국 시 한 여자를 데려왔다고 알려준다. 사토코는 당연히 남편의 성실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다. 이 여자는 만주의 일본군이 저지른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적은 노트를 소지했고 후쿠하라는 이를 기록한 필름을 갖고 귀국한 것이다. 그는 이 필름을 미국에 전달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얼마 후 여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사토코가 남편의 의심스러운 행동에 관해 묻자 후쿠하라는 진실을 밝히는데 그 것이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알 길이 없다. 이로 인해 사토코와 후쿠하라 간의 부부관계에 공백이 형성되고 사토코는 남편과 조국에 대한 사랑과 충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사토코는 이런 갈등을 통해 서서히 내적 강인함을 찾게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온순한 사토코가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감이 강한 여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하나의 심리극 형태를 보여준다. 사토코 역의 아오이 유가 외유내강한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 세트와 의상과 촬영도 아주 좋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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