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콩, 콩…” 나지막하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자정을 넘긴 시간인데. 이윽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방문을 쓱 열고 그가 들어왔다. 침대에 오르려는 그를 제지하고 바닥에 깔아 놓은 매트리스로 그를 이끌어 함께 누웠다. 그는 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보더니, 안심한다는 듯 씨익 웃는다. 왼쪽 입술 언저리의 작은 보조개가 유난히 사랑스럽다.
닉네임을 마나님으로 저장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평생 아내 바보로 살아오던 남편이 어느 날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몇 달을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가슴 한복판에 돌덩어리를 안고 살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안간힘을 쓰며 간신히 숨을 넘긴 적도 여러 번 있다. 미친 사람처럼 가슴을 쥐어뜯으며 마구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애먼 가족에게 화풀이하듯 상처 주는 말들을 쏟아냈다.
결국, 아이들의 간곡한 권유로 지척 거리에 있는 내 집을 비워 두고 아들네로 들어왔다. 아들에게는 세 살과 한 살인 두 아들이 있다. 한 살배기 손자는 제 엄마 품에 안겨 있다가도 나를 보면 “그랜 마, 그랜 마” 하며 데려가라고 두 손을 내밀며 반긴다. 큰 손자의 할머니 사랑은 더 대단하다. 얼굴만 마주치면 달려와 뽀뽀를 쉴 새 없이 해대고 무엇을 하든지 할머니를 찾는다. 아이랑 함께 있다 무심코 눈물을 쏟고 있을 때는, 분위기로 무얼 느꼈는지 “It’s OK, It’s OK “ 하며 고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거린다. 야단치는 일 없이 이뻐해 주기만 해서 할머니를 잘 따르는지 모르겠지만, 제 부모와 함께 잠들었다가도 한밤중이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으레 내 방으로 건너와 나와 함께 자야 한다. “아이구 이쁜 내 새끼”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의 볼에 살짝 뽀뽀하니 잠결에도 “아이 좋아, I love you” 하면서 내 얼굴을 쓰다듬고는 깊은 잠에 빠진다.
사람은 철저히 자기 본위라는 생각이 든다. 시린 가슴속으로 파고든 손자의 조건 없는 살가움은 조금씩 치유의 기적을 선사하며, 내게 살아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편안히 잠든 아이의 손을 잡고 나도 어느새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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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씨는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졸업, 가톨릭 문학협회 시조부문 신인상 수상, 버클리 문학협회 시조부문 신인상 수상, 버클리 문학협회 회원,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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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