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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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우리에겐 오늘이 있다

2021-07-19 (월) 김소형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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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던 한 청년시인이 있다. 2017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은 시인 ‘박준’, 그의 여러 시집 중에 마음을 잡아끄는 제목이 있는데 바로 2012년 첫 시집으로 발간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을 먹은 일들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를 떠올리며 시인의 글귀에 감동한다. 어떤 그리움으로 또는 어떤 갈등의 상황에서도 마음의 고리에 담겨 있는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 며칠을 먹었던 기억들, 곡기라도 공급해 주어야 함에도 그럴 힘조차 없을 만큼 마음이 아플 때 봉지에 든 쓰디쓴 약처럼 그 무엇의 이름을 지어다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간들이 함께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시를 펼쳐 읽었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는 시구의 의미를 알게 된다. 시인은 실제 누군가의 이름인 자서전을 쓰며 그것을 생계로 살아내던 삶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연 시인만이 그럴까? 우리는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뿐 아니라 몇 달과 몇 해를 살고, 이름뿐만 아닌 집을 짓고 차를 사고 하늘을 날기도 하지 않는가? 누군가의 이름을 가슴에 지어 먹는 일과 무언가를 지어 생계를 이어가는 일. 모두 삶의 이야기이다. 타인을 대변하는 자서전을 쓰며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가던 시인의 글에서 그의 작업과 삶에 대한 진지함을 읽을 수 있었다.

2021년도 어느덧 한여름 속에 있다. 올해 봄에 지어다 먹은 이름들과 현재와 다가올 시간의 이름들 속에서 20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폴 발레리(Paul Valery)의 명언을 만난다. 그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늘 생각은 먼저이나 행동하지 않으면 그저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50여년의 긴 세월 동안 매일 단상을 기록하고 시 제목처럼 실제 지중해가 바라다보이는 해변에 묻혔다. 그의 시 ‘해변의 묘지’ 마지막 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바람이 분다. 살아보아야겠다.’

이제 또다시 살아내는 일, 바람이 불어도 바람의 이름을 지어다 먹고, 생각한 대로 살아내기가 어려울지라도 그리 한번 살아내보자고. 시간과 공간을 건너온 그들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오늘이다. 우리에겐 오늘이 있다.

<김소형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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