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 새 영화 ‘완벽한 적’(A Perfect Enemy) ★★★★ (5개 만점)
▶ 철저히 대사와 연기 위주의 영화로…심리 탐구이자 성격과 내면 파헤쳐
텍셀(왼쪽)과 제레미아스가 공항 대기실 바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끊임없이 지껄이는 생면부지의 젊은 여자에 의해 자신의 구조적으로 완벽한 삶이 안에서부터 붕괴되는 중년 남자에 관한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로 뭐라고 정의를 내리기가 힘드나 시종일관 보는 사람의 관심을 잡아당기는 흥미 있는 작품이다. 감독은 스페인 태생의 키케 마이요.
철저히 대사와 연기 위주의 영화로 영화의 대부분이 공항의 대기실에서 두 사람이 마치 언어의 대결을 하듯이 대화로 맞서면서 진행되는데 대사가 계속되면서 서서히 긴장감이 고조된다. 대사는 주로 젊은 여자가 하는데 이 활기찬 젊은 여자 텍셀 텍스토어로 나오는 아테나 스트라테스의 연기가 강렬하다.
폴랜드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제레미아스 앙구스트(토마스 콧)가 파리에서 강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 때 서방세계의 값진 건물만 건축하다 심각한 개인적 위기를 겪은 후 앙골라의 빈민들을 위한 병원을 짓는 인본주의자로 변신한 제레미아스는 겉으로 보기엔 결점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남자다. 그에게 어두운 점이 있다면 20년 전에 파리에서 살 때 임신한 아내가 실종된 것. 그는 아직도 결혼반지를 끼고 있으면서 아내의 실종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강연이 끝나고 제리미아스는 폭우 속에 바르샤바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데 신호대기 도중에 한 젊은 여자가 닥아 와 자기도 공항으로 간다며 차를 태워 달라고 부탁해 태운다. 그리고 이 여자는 자기는 홀랜드 사람으로 이름이 텍셀 텍스토어라고 소개를 한다. 생기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쳐흐르다시피 하는 텍셀은 이 때부터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제레미아스는 비행기를 놓치고 자기가 디자인한 공항 대기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역시 비행기를 놓친 텍셀도 대기실로 들어와 제레미아스 앞에 앉아 제레미아스가 대화하기가 싫다고 말 하는데도 자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텍셀은 자기 과거를 세 단계로 구분해 들려주겠다면서 첫 부분은 역겹고 두 번째는 무섭고 마지막 것은 사랑으로 끝난다고 토를 단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 자기는 살인자라고 고백한다. 텍셀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이야기속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도대체 왜 텍셀은 집요하게 제레미아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텍셀의 이야기 속의 중요한 인물인 여자(마르타 니에토)가 회상 식으로 전개되는 제레미아스의 과거 속의 중요한 인물과 겹쳐지면서 텍셀이 무작위로 이야기 상대자를 제레미아스로 고른 것이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그런데 제레미아스의 이런 경험은 과연 하나의 현실인가.
죄의식과 억눌린 감정에 관한 심리 탐구이자 개인의 성격과 내면을 파헤친 단단히 조여진 거의 초현실적인 스릴러로 이야기가 겹겹이 쌓이고 환상과 현실(?)이 마구 뒤 섞이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윽박지르다 시피하며 제레미아스에게 자기 얘기를 들려주는 아테나 스트라테스의 연기가 눈부시고 이에 맞선 토마스 콧의 차분한 연기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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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