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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인가 ‘여론조성’인가

2021-06-09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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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 11일 치러지는 국민의 힘 당 대표 경선에서 불고 있는 ‘이준석 ‘돌풍’이 과연 사상 초유의 30대 대표 선출로 이어질지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로선 이준석의 거침없는 파죽지세를 중진 후보들이 막아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국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이준석 돌풍’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현상이 아니다. 지난 달 중순만 해도 이준석의 지지율은 오히려 한 중진 후보에 약간 뒤지고 있었다, 그러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조금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이것을 언론들이 ‘돌풍’ ‘쇄신의 아이콘’ 같은 제목을 달아 보도하면서 지지율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지율이 오르면 언론들이 이것을 또 다시 크게 보도하고, 그러면 뒤이어 지지율이 더 뛰는 사이클이 반복됐다. 이른바 여론조사의 ‘눈덩이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준석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자 그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했거나 무관심했던 국민들과 당원들의 마음이 그에게 급격히 쏠린 결과로 보인다. 아무리 야당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열망이 컸다 해도 이것만으로 구도나 인물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단 두 주 사이의 어지러울 정도의 지지율 변화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한국은 대표적인 ‘여론조사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것이 여론조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지지율 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신 사나울 정도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정확도에 비해 너무 비대화 돼 있다.

그 중심에는 언론들의 여론조사가 있다. 언론의 자체적인 여론조사는 1975년 뉴욕타임스와 CBS 뉴스가 공동으로 실시한 것이 처음이었다. 이후 독자적으로 혹은 전문기관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하는 언론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행태에 대해 “언론이 뉴스를 보도하는 게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라는 윤리논쟁이 제기되기도 한다.

논란과 관계없이 이제는 메이저 언론뿐 아니라 생소한 이름의 군소언론들까지 여론조사 경쟁에 뛰어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조사결과들을 내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의식은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처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정치판이 요동치는 나라는 없다. 그만큼 여론조사의 오·남용 가능성이 크다.

여론조사 결과들 사이의 극심한 편차는 이런 우려를 한층 더 증폭시킨다. 지난 달 30일 한 언론은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윤석열이 이재명에 10%포인트 이상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하지만 불과 사흘 후에는 이재명이 적합도에서 윤석열에 8%포인트 앞선다는 다른 조사결과가 나왔다. 두 조사의 편차는 무려 18%포인트에 이른다. 같은 민심을 측정한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표본과 조사방식을 이유로 지적하기도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여론조사의 정치성이다. 여론조사는 어떤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던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조사기관이 의뢰인의 의도와 입맛에 부합하는 결과를 얼마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까닭에 여론조사 결과로 포장돼 나오는 수치는 더 이상 민심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풍향계로 보기가 힘들다. ‘여론조작’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여론조성’을 위해 이용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이다 여기에다 자신들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뉴스를 버리거나 키우는 선택적 보도태도까지 더해지면 국민들의 의식이 언론의 의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가 된다.

과학적인 여론조사 방법을 고안해 여론조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갤럽은 “여론조사는 스냅 사진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여론조사는 더 이상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스냅사진이라 부르기 힘들 것 같다. 렌즈에 이물질이 끼어 있거나 의도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뽀샵’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조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휩쓸리게 되면 판단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여론조사에서 나온 수치는 잊는 게 좋다. 인물을 선택해야 할 경우라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드러나는 생각과 구상, 그리고 살아온 삶의 행적을 두루두루 찬찬히 살펴본 후 마음을 정해도 늦지 않다.

전직 검찰총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선과 관련해 자신의 입으로 공식적인 입장이나 생각을 밝힌 적이 없다, 그런데도 반복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유력 대선주자로 만들어졌다. ‘여론조사 공화국’에서나 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다. 그래서 입은 굳게 다문 채 ‘간보기’ 행보만을 지속하고 있는 그에게서 어떤 얘기를 듣게 될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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