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모범택시’, ‘마우스’에 이르기까지 최근 한국 드라마는 다크 히어로물이 대세다. 히어로 앞에 ‘다크’라는 설정을 추가한 다크 히어로 드라마들은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처단하며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주인공이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악당을 무찌르는 이야기 구조는 과거 드라마들이 주로 택했던 권선징악적 정의구현과는 거리가 멀다.
성황리에 종영한 드라마 ‘빈센조’는 이탈리아의 마피아 변호사인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분)가 한국에 와서 마피아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이야기다. 주인공 빈센조는 마지막회에서 명대사를 남긴다. “정의는 나약하고 공허하다. 이걸로는 그 어떤 악당도 이길 수 없다. 만약에 무자비한 정의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기꺼이 져줄 용의가 있다”고.
오늘날 다크 히어로물이 부상하는 배경에는 부조리한 현실 세계가 존재한다. 돈, 명예, 권력만 있다면 그 어떤 부정을 저질러도 용서되는 사회에서 빈센조의 말처럼 정의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공권력을 향한 깊은 불신 속에서 개인의 억울함을 풀어줄 악당이 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상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달 말 한강에서 사라졌던 의대생 손정민(22)씨가 실종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친구와 함께 오후 11시께부터 이튿날 새벽 2시께까지 반포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시던 손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해당 사건을 두고 경찰 당국과 시민들의 반응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애당초 경찰은 실족사에 무게를 두고 고인의 죽음을 수사하고 나섰지만, 시민들은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문점을 근거로 살인사, 과실사 등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손씨 죽음과 관련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은 현재 43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지난 주말에는 한강공원에서 고인을 위한 시민들의 평화집회가 열려 경찰들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 수백여 명은 ‘신속·공정·정확· 수사 촉구’, ‘CCTV 공개하라’, ‘조작하지 말아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문제의 핵심은 시민들이 경찰 수사를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 관련 여러 의혹들이 불거지는 상황에서도 경찰 측의 미지근한 대응이 불신을 더욱 키웠다. 수많은 시민들이 방구석 탐정이 되어 온라인 수사를 펼치고 있는 상황 속에 진실은 여전히 미궁에 빠졌다.
공권력이 더이상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다수의 믿음은 사회공동체를 위협한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존재는 다크 히어로 뿐이다. 악을 악으로 위협하는 다크 히어로의 세상은 과연 올바른가. 다크 히어로의 인기가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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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