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총
2021-05-12 (수)
구자빈 사회부 기자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 행태와 증오·폭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총기 폭력과 총기 관련 사건·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사실도 다시 강조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미국내 아시안 아메리칸들을 겨냥한 증오와 폭력이 빈발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아시아계 주민들 사이에서 총기를 구입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위협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무장하려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늘어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총기를 구입하려는 아시아계 미국인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일견 무고한 사람들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총기를 구입하는 것은 타당한 자기방어적 자세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양날의 검처럼 무분별한 총기 구입 트렌드에 따라오는 심각한 부작용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아시안 아메리칸 리더들 및 아태계 커뮤니티 관계자들은 지난 4일 줌 회견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큰 문제로 부상한 아시안 증오범죄 관련 총격사건 및 총기사고 피해 등에 대해 논의하며 정부에 강력한 총기 규제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주최 측이 공유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는 총기 구매율이 2019년 대비 40%나 증가했고, 올해 1월에도 이미 총기 410만여 정이 판매되며 총기 구입 현상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매김 했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날 회견에서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자기방어의 용도로 구입한 총기가 오히려 자살, 총기폭력, 도난피해 등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과 부작용을 낳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지적하며 대중의 인식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실제로 미국의 총기 사고를 다수 다룬 연구 논문 약 30건을 분석한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기사에 따르면 오히려 총기를 소유하는 것 그 자체로도 살인 및 자살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방어 목적으로 집안에 총기를 소지했던 사람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보다 살해 당할 위험이 2.7배나 높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애초에 총기를 사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매우 큰 위험 요인이며 방어 효과 또한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하면 자기방어를 위한 총기 소지는 오히려 자신을 더 큰 위협에 놓이게하는 아이러니로 이어지게된다.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폭력을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최근 들어 급증한 총격사건을 ‘공중 보건에 대한 위기’로 일컬으며 총기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간 전례를 볼 때 총기난사 사건 발생 이후 정부가 더 엄격한 총기 규제를 추진할 때마다 총기를 비축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커져 늘 총기 판매가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었다. 미국내 총기 문제는 규제 강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가능할 지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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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빈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