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는 도시도 시골도 아닌 ‘도시골’이다” 동네 산책을 하다 아내가 한 말이다. 도시계획을 전공한 나는 이 말을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워싱턴 DC는 도시 경계에 거주하는 인구가 약 70만으로 미국 내 20번째로 큰 도시이다. 사람들의 실질적인 사회.경제권으로 보았을 때 DC 지역은 약 600만 인구로 미국 내 6-7위권의 결코 작지 않은 광역생활권의 중심지다. 하지만, 수도라는 특수성과 상징성으로 건물 높이 제한이 있어 비슷하거나 더 적은 인구의 도시와 비교해 도심에 고층 빌딩 숲이 없어 한적해 보이긴 한다.
국회와 백악관 사이에는 내셔널 몰이 자리 잡아 푸른 녹지띠를 형성하고 있고, 정확한 비율은 모르지만 육안으로 본 인근의 볼티모어나 필라델피아와 비교해 DC에서 녹지를 발견하기 쉬운 것 같다.
DC 안에서도 내가 사는 우들리 파크라는 동네는 도시 안에 있지만 100년은 족히 될 것 같은 나무들이 무성한 주거지역이다. 집에서 5분 10분 걸음으로도 도시에서 대자연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무성한 숲이 존재한다.
국가마다 도시를 규정짓는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DC는 미국 그리고 한국 기준으로도 모두 엄연한 도시로 분류되지만, 뉴욕에서 살다 DC로 이사 온 아내에게는 이곳이 상대적으로 시골같이 느껴져 ‘도시골’이라는 표현을 생각해낸 것 같다.
‘도시골’이라는 단어가 너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표현이 씐 적이 있을까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몇 년 전에 ‘도시골사람’이라는 책이 출판된 것을 확인했다. 아내가 가장 먼저 만들어낸 말이 아닐까 했던 신남의 김이 조금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요새 산책을 하면 도시골의 삶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사무직들이 다수인 회사마다 방침은 다르겠지만, 올 가을부터는 다시 출퇴근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팬데믹 전처럼 매일 출근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 또한 많다. 회사 부서 미팅에서는 가을부터 출퇴근이 시작되면 과거와 달리 대중교통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져 자가용으로 출퇴근이 늘어 도심 혼잡이 늘고 출퇴근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나누고 있기도 하다.
우리 동네에는 큰 상권이 없지만 지하철역, 편의점, 맥도널드와 식당 몇 개 정도가 자리 잡고 있다. 동네 편의점 약국에서 코비드 백신도 맞고, 지하철 혹은 버스를 타고 한두 정거장만 가면 식당들이 밀집된 곳에서 음식을 픽업해서 먹을 수도 있고, 재택근무를 하다 지치면 바람을 쇄러 인근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단독주택들 앞에 꾸며진 화단에 핀 봄 꽃들을 보면서 마음의 평안함을 찾고 있다. 아내는 우리가 모르는 꽃들의 사진을 식물 커뮤니티에 올려 꽃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 또한 만끽하고 있다.
팬데믹 전 나는 유목민처럼 1년의 절반 남짓한 시간만 DC에 있었고, 그 시간마저 주로 사무실에서 혹은 사람들 만나면서 보내느라 DC가 도시와 시골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잘해보지 못했는데, 팬데믹을 통해 DC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고 지금은 도시골에서의 삶을 온전히 만끽하고 있다.
물론 뉴욕이나 서울 같이 맛집들이 많지 않고, 밤에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아침저녁으로 새들의 지저 김과, 대자연의 봄기운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이 곳이 요새같이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시기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팬데믹 이후의 도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뉴욕 맨해튼이나 전통적인 미국 교외지역(Suburb)이 아닌 DC와 같은 ‘도시골’들이 더욱 각광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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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