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유 대란을 겪으며

2022-06-11 (토) 이보람 수필가
작게 크게
분유 대란이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분유를 구한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아이의 특성에 따라 특수분유를 먹이는 부모들의 고충은 더 심각하다. 모유 수유를 끊었던 엄마들이 다시 모유 수유를 시작해보려고도 한다고 한다. 어떤 엄마들은 유럽이나 한국 등지에서 분유를 구해 온다고 한다. 불필요하게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런 때를 틈타 장사꾼들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 분유를 기존 가격보다 비싸게 거래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세균 감염 문제로 미 최대 분유 제조사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시작된 분유 대란은 약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해외 분유 긴급 수송 및 미국 내 분유 생산 공장 재가동을 지시했지만 한동안은 분유 구입에 어려움을 겪을 듯하다. 최종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겠지만 아이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분유 대란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첫째는 이제 커서 유아식을 하고 있기에 큰 타격은 없지만 곧 태어날 둘째 아이를 생각하니 앞날이 캄캄하다. 아직 두 달여남짓 시간이 있지만 그때까지 분유 파동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출산 후 모유 수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험상 출산직후 모유양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혼합 수유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든 모유에 최대한 의지해야 하는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팬트리를 요리조리 뒤져 보니 분유 한 통과 이유식 초기에 쓰이는 오트밀 세 박스가 나왔다. 유통기한을 확인하니 8월까지라 아직 먹일 수 있는 것들이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먹이기엔 때가 안 맞지만 지금 분유 파동에 발을 동동 굴리고 있을 엄마들을 위해 나눔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퍼뜩한다. 사진을 찍어 바로 지역 페이스북 그룹에 올렸다. 오분이 채 안돼 댓글이 달렸다. 한 아이 엄마가 저녁에 바로 들러서 가져가겠다고 한다. 집주소를 알려 주고 조심히 오라고 했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페이스북에서 쪽지를 주고받았던 그 엄마인가 보다. 반갑게 인사하고 준비해둔 분유와 오트밀을 손에 쥐어 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이내 차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여자의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 빨리 아이를 먹일 생각에 신이 난 모양새다. 비록 작은 나눔이었지만 같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어 좋았다. 뱃속에 아가도 기분이 좋은지 힘껏 발길질을 해댄다. 아빠와 먼저 밥을 먹고 있던 첫째 아이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까르르 웃어 보인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우리 부부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비록 반찬 가짓수는 적지만 모두의 웃음이 더해져 풍성한 저녁이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쯤이면 이 분유 대란도 조금 수그러들까.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첫째 아이는 코로나 사태 한가운데서 태어나더니 이번에 둘째 아이는 분유 파동 한가운데서 태어나야 한다니 슬프다. 태어나자마자 겪어야 하는 고난이 배고픔이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온 힘을 다해 세상에 나올 내 아기와 지금도 어딘가에서 분유를 찾지못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을 부모들에게 하루빨리 희소식이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이보람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