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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는 여전히 옳다”

2021-04-2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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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대비되는 연봉 관련 뉴스 두 건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6년 전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로 대폭 올려 찬사와 조롱을 함께 받았던 시애틀 소재 크레딧카드 결제회사 ‘그래비티 페이먼트’의 근황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대기업 CEO들의 연봉이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크게 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비티 페이먼트’는 “곧 망하게 될 것”이라는 보수 매체들의 악담과 저주를 비웃기라도 하듯 날로 번창중이다. 직원은 130명에서 200명으로 늘었으며 수익은 3배나 증가했다. 팬데믹이 닥쳤을 때 수익이 급감해 한때 위기도 있었지만 직원들의 자발적 감봉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깎였던 봉급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으며 삭감했던 봉급도 다시 환급해줬다. 뒤이어 연봉이 인상됐다.

미증유의 최저 연봉 7만 달러 실험을 시작한지 6주년이 되는 시점이었던 지난주 경영주인 댄 프라이스는 그간의 성과와 회사 현황을 전하면서 직원들이 경제적 안정 속에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6년 전 프라이스를 “사회주의자”라 칭하면서 “그래비티 페이먼트는 왜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지에 대한 경영대학원의 대표적 연구사례가 될 것”이라고 비꼬았던 극우 방송인 러시 림보(그는 얼마 전 사망했다)의 조롱을 의식한 듯 “우리 회사는 하버드 MBA 과정의 케이스 스터디가 됐다”고 자랑했다.


프라이스는 보란 듯 자신의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비판자들을 머쓱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가 그래비티의 성공을 널리 알리려 하는 것은 잘난 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경영주들도 자신의 방식을 고려해봤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연봉과 관련해 같은 시간 들려온 또 하나의 뉴스는 근로자들을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팬데믹의 고통 속에서도 S&P 500지수에 오른 미국 기업 CEO 322명의 지난해 연봉 중간 값이 2019년보다 7%나 오른 1,370만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였다. 직원들에 대한 가차 없는 감원과 해고의 칼바람 속에서도 경영자들은 역대 급 액수의 돈을 챙겨간 것이다.

경제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CEO들은 일반 직원들보다 320배 정도 더 많은 돈을 받는다. 1978년 이후 CEO 연봉은 무려 940%나 올랐지만 평균적인 근로자 연봉은 겨우 12% 올랐을 뿐이다. 자신의 연봉을 90%나 깎으면서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대폭 올려준 프라이스의 실험은 이런 추세에 대한 반기였다.

6년 전 그가 직원 최저 연봉을 7만 달러로 결정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과 다니엘 카네만의 2010년도 연구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들은 수입이 늘면 행복감이 늘어나지만 일정 선까지만 그렇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그 기준을 7만5,000달러로 봤다.

프라이스도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이전의 백만장자 스타일의 삶이 전혀 그립지 않다면서 “빈곤을 벗어날 때까지는 돈이 행복감을 안겨주지만 잘사는 상태에서 좀 더 잘살게 됐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프라이스는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관심을 끈다. 우선 그는 부자들과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 성과가 밑으로 흘러내려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낙수효과’를 ‘사기’라고 비판한다. 그는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고 모두가 잘 살려면 밑에서부터 성장 동력이 만들어져 위로 널리 퍼져나가야 한다는 ‘분수효과’의 신봉자이다.

또 하나는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확고한 지론이다. 기업에 성공을 안겨주고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직원들인 만큼 이들에 대한 투자와 처우 개선이 최우선 돼야 한다는 것이다. 말단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파격적으로 올린 그의 결정은 이런 믿음에서 비롯됐다.


요즘 미국기업 CEO들의 일반적 생각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소신이다. 직원들에 대한 예의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기업 풍토에서 프라이스와 ‘그래비티 페이먼트’의 성공은 ‘인간존중 경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프라이스가 고집스레 지속해온 것은 사회주의가 아닌, 새로운 자본주의의 실험이었다. 6년 전 그가 파격적인 실험에 돌입하자 “프라이스가 옳다”(Price is right)는 격려가 쏟아졌다. 가격을 알아맞히는 인기 예능프로그램의 제목에 빗댄 응원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라이스는 여전히 옳다.”(Price is still right.)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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