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해탄’ (Manhattan·1977) ★★★★★(5개 만점)
안개 낀 새벽 퀸즈보로 다리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아이작과 메리.
뉴요커인 우디 앨런이 뉴욕에 바치는 송가로 로맨틱하며 깊이와 통찰력과 유머와 우수가 고루 깃든 작품으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앨런의 영화다. 특히 이 도시의 분위기와 함께 보도와 벽에 묻은 매연의 흔적과 돌 조각 하나까지 미세화 그리듯이 찍은 고든 윌리스(앨런의 단골 촬영 감독)의 흑백 촬영이 가히 최면적이다.
거쉬인의 ‘라프소디 인 블루’로 시작되는 영화는 두 번이나 이혼한 작가인 중년 남자와 그의 애인으로 틴에이저인 여고생 그리고 작가의 친구인 유부남과 이 친구의 애인으로 저널리스트인 젊은 이혼녀 또 이 작가와 저널리스트가 서로 뒤엉켜 사랑하고 웃고 울고 지껄이는 이야기.
작가인 42세난 아이작 데이비스(앨런)의 애인은 고등학생인 17세 짜리 트레이시(매리엘 헤밍웨이-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손녀)로 아이작은 트레이시를 사랑하나 자기 딸 같은 나이여서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이작의 친구 예일은 아내 몰래 젊고 아름다운 이혼녀인 저널리스트 메리(다이앤 키튼)와 혼외정사를 불사르고 있는데 예일이 메리와 헤어지면서 메리를 아이작에게 소개, 이번에는 아이작과 메리가 연인 사이가 된다.
아이작은 메리에게 마음이 끌리면서 트레이시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불길을 끄라고 독촉하는데 아이작과 트레이시의 관계가 마치 우디와 순이의 관계를 보는 것 같다. 아이작과 트레이시의 나이 차는 25년이고 우디와 순이의 그 것은 30년. 아이작의 전처로 메릴 스트립이 잠깐 나온다.
영화는 아이작이 맨해탄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카우치에 누워 녹음기에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마지막 부분이 시작된다. “어디 보자, 막스 브라더스와 ‘주피터’ 교향곡의 제2악장, 윌리 메이스와 샘 워 식당의 게 요리 그리고 트레이시의 얼굴...” 여기까지 말한 아이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트레이시가 사는 아파트까지 냅다 달려간다. 아이작을 따라 카메라가 맨해탄을 파노라마로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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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