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4.7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집권여당이 1주일이 지나도록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불과 1년 전 압도적인 의석을 안겨줬던 민심이 매섭게 돌아선 것으로 드러나자 납작 엎드린 채 반성과 성찰, 그리고 쇄신을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패인과 향후 당의 진로와 관련해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부딪히면서 파열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워낙 예상을 넘어선 참패였던 까닭에 멘붕 상태에 빠진 듯하다. 한동안은 패배의 여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패인을 두고 여러 진단들이 나오고 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책실패와 오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시장의 불안정 등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민심은 LH 직원들의 투기사건과 선거 직전 불거진 여당 의원과 청와대 참모의 부동산 관련 ‘내로남불’ 행태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세세한 사실관계에서는 일부 억울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당은 무조건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 그래도 돌아설까 말까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이들의 오만한 태도였다. 당은 상황수습을 위해 공식적으로는 반성의 뜻을 담은 논평을 내놓았지만 다수 여당의원들의 속내는 진정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한 의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민주당에서 문제되는 규모는 억대 단위지만 국민의 힘에서 문제돼 탈당한 사람들을 보면 몇 십억 몇 백 억 단위”라며 “야당과 상대비교를 해 달라”고 말했다. “그래도 보수보다는 진보가 깨끗하지 않은가”라며 상대적인 도덕성을 내세운 것이다. 이 국회의원의 인식에는 진보를 유권자들의 마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전형적인 착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도덕과 관련한 이슈가 터지면 진보 후보들은 종종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깨끗하다” 혹은 “덜 더럽다”는 식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자기방어를 한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일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이런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옳지 않다.
공직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대적 청렴이 아니라 절대적인 도덕성이다. 덜 더럽다는 것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여당의원과 청와대 참모의 부동산 문제가 터졌을 때 물귀신 해명을 할 것이 아니라 잘못한 일이라며 무조건 자세를 낮춰야 했다.
‘진보=도덕성’이라는 프레임이 발목을 잡을 때마다 진보로서는 부담과 함께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 있다. 본래 도덕성은 보수의 덕목이 아니었던가. 최소한 똑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할 가치이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진보는 더욱 깨끗함을 요구받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이명박의 경우에서 봤듯 보수의 부패는 진보보다 좀 더 관대하게 용인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수치까지 들먹이며 상대적 청렴을 내세우는 것은 별로 현명한 선거 전략이 될 수 없다. 특히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분노로 민심이 끓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오만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이런 접근은 유권자들을 더 화나고 짜증나게 해 오히려 마음이 더 돌아서게 만들 뿐이다.
진보가 똑똑히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유권자들의 선택이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물건을 골라 쇼핑을 하듯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결정은 항상 합리적인 논리나 정확한 계산을 따르지 않는다. 특히 상황과 조건이 불확실한 경우 확률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그냥 단순한 지식이나 직관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이해하기 쉽게 흔히 ‘어림짐작’ 정도로 번역되는 ‘휴리스틱스’(heuristics)가 그것이다.
진보는 이번 선거에서 뚜렷이 드러난 유권자들의 ‘휴리스틱스’에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궐선거 결과는 정치적 지지와 관련해 지금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관망해온 다른 지역의 많은 부동층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대세에 올라타려는 심리가 있다.
진보는 뼈저린 자기반성 위에 철저한 패인 분석을 통해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도덕성의 비교우위만 내세우거나 상대방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전략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확인됐다. 똑같은 참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유권자들을 탓하기 전에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더 넓히기 위한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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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