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벽공기 뚫고 준령 너머 찬란한 태양이…

2020-10-30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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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1) Desert Divide 6 Peaks

새벽공기 뚫고 준령 너머 찬란한 태양이…

Desert Divide 준령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해.

새벽공기 뚫고 준령 너머 찬란한 태양이…

South Ridge Trail의 어느 구간.


새벽공기 뚫고 준령 너머 찬란한 태양이…

서쪽 PCT에서 본 Antsell Rock.


젊은 열혈 등산후배 제이슨이 Desert Divide 8 Peaks의 당일 종단산행을 제안해 왔다. Idyllwild의 South Ridge Trailhead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Tahquitz Peak(8780’), Red Tahquitz Peak(8730’), Southwell Peak(7865’), Antsell Rock(7679’), Apache Peak(7540’), Spitler Peak(7461’), Pyramid Peak(7165’), Cone Peak(6850’)을 오른 후에 Cedar Springs Trailhead에서 마치는 산행이다. 약 22마일의 거리에 Elevation Gain이 약 7000’로 14시간 내외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Divide’란 ‘분수령’이란 말이니, 이 산줄기의 동쪽과 서쪽에 내리는 빗물의 흐름이 서로 갈린다는 의미일텐데, 아무튼 Desert Divide의 중심릉선으로 이어지는 PCT를 따라가는 형국인 이 산행은, 2012년 9월 3일에 동일한 Route로 Sandy, Susan, 일우와 넷이서 아주 힘들게 종단한 적이 있다. 그 때의 고통이 떠올라 참가여부를 놓고 이틀을 망서린다. 결국엔 제이슨의 열정과 배려에 끌려, 동참을 결심한다. Troy전쟁을 마치고 Ithaca로 돌아가던 뱃길에 바다의 요정Siren의 감미로운 노래의 유혹에 이끌렸던 Odysseus처럼, 난 매번 제이슨이 내뿜는 강렬한 자력에 이끌리곤 한다.

다행히 제이슨의 이런 이끌음이 어느 덧 노년에 접어든 나의 산행이력을 훨씬 더 풍성하게 해 주곤 한다. San Antonio Ridge Traverse, Yucaipa Ridge Traverse, Triplet Rocks, Rosa Point-Villager-Rabbit, McKinley-San Rafael-West Big Pine-Big Pine, Rim2Rim들이 그 좋은 예이다. 어쨌거나 젊은 후배들이 힘든 산행을 함께 하자는 요청을 해오는 것은 나이먹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적잖게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이 산행은 거의가 다 험준하고 건조한 사막구간이라 아무래도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데, 산행의 전 노정에 걸쳐 식수를 아예 구할 수 없으니, 처음부터 다량의 물과 2~3끼 음식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또 왕복산행이 아니라서 중간에 여분의 물이나 음식을 Stash하여 무게를 줄일 수도 없는데, 특히 매우 가파르고 험상궂은 Class 3암봉인 Antsell Rock의 등반에는 안전을 위하여 반드시 헬맷을 착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Sierra Club의 등반수칙이라서, 크진 않더라도 이 또한 배낭무게의 가중요인이기도 하다. 난 3.5리터의 물을 소지한다.

산행의 동반자로는 제이슨과 일우, 건장한 백인청년 Larry, 이란출신 여성 Nahid, 중국출신 여성 Wei에 이어, Sierra Club멤버는 아니지만 2012년에 이 라우트의 등산을 함께 했던 Sandy를 포함하여 7명으로 정해졌는데, 마지막 싯점에 Wei가 빠지게 되어 6명이 된다. Sandy는 작년에는 단신으로 Grand Canyon을 찾아가, 48마일에 달하는 ‘Rim2Rim2Rim’ 연속산행을 잘 마치기도 한 열성적인 등산애호 여성이다. 참가자의 연령분포를 보면 나와 일우는 50년대 생이고, 기타 4인은 모두 70년대 생인데, 내가 가장 고령이라 이 점도 다소 마음에 걸린다.

가는 길

10월18일 새벽에 집을 나선다(02:20). 중간에 일우와 Sandy를 내 차에 태우고 약 120마일 거리인 산행의 종점으로 정한 Cedar Springs Trailhead에 도착한다(04:55). 제이슨과 Nahid가 한 차로 왔고, Larry는 홀로 왔으니 모두 3대의 차가 모인 셈이다. 차 2대는 이 자리에 세워놓고, 내 Land Cruiser에 우리 6인이 모두 타고 산행의 출발점인 Idyllwild의 South Ridge Trailhead에 도착한다(05:57).

각자 나름대로의 등산준비를 다 마치고, 출발점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06:08). 물론 모두 헤드램프를 썼다. 선두엔 리더인 제이슨이 서고, 나는 대개는 그렇듯, 대오에서 이탈되는 대원이 없도록 뒤에서 챙기는 Sweeper의 역할을 자청한다.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는 나로서는 맨 뒤에서 걷는 것이 사진을 찍기에도 좋고, 중간 중간에 잠시 잠시 멈춰서서 거리나 고도 등 필요한 사항을 메모하기에도 편리하다.

고산지대 숲의 새벽공기는 그야말로 더없이 싱그럽고 청량하다. 가슴이, 아니 온 몸과 정신이, 밤하늘을 휘황하게 밝히고 있는 뭇 별들의 정기가 그대로 녹아내린 맑디 맑은 정화수로 싹 씻기는 듯 시원하고 상쾌하다.

Tahquitz Peak을 오르기엔 Humber Park에서 시작되는 Devils Slide Trail보다South Ridge Trail이 1마일 정도 거리가 짧아 더 유리하다. Elevation Gain은 거의 동일하나 경치는 더 수려하다는 것도 내 생각이다. 봄철에는 Manzanita의 연분홍 꽃들이 만개하여 말 그대로 ‘환상적인 꽃동산’을 이루곤 한다. 등산로 주변의 소나무들도 더욱 장대하고 바위들도 더욱 다양하고 더 기묘하다는 느낌이다. 다만, 이 South Ridge Trailhead에 이르는 마지막 1마일 남짓한 비포장도로가 아주 거칠어 4x4차량이 필요하다는 제약이 있다.


산뜻한 걸음으로 산행에 나선지 40여분이 지날 시각에 저만큼 멀리 우리가 지나야 할 Desert Divide 능선 위로 해말갛게 노랗고 하얀 해가 빼꼼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06:50). 오늘의 산행에서 가장 험준한 구간인 세번째 봉우리인 Southwell Peak과 네번째인 Antsell Rock 사이의 Saddle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하듯, 맑고 밝은 불덩이가 뭉글 뭉글 자라 오른다. 예기치 않은, 멋진 일출을 맞는 기쁨으로 다들 환하게 술렁이며 동심어린 감탄성을 발한다.

등산로 주변의 바위들이 더욱 우람한 가운데 스윗치백이 이어지는 다소 가파른 지역을 지나니, 왼쪽으로 등산로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에 이른다(08:08; 3.6 Miles; 8737’). 오른쪽이 Tahquitz Peak 에 이르는 짧은 길이다. 새롭게 도장된 산불감시소 건물이 우뚝하다. 오늘의 산행에서 첫째봉이며 최고봉인 Tahquitz Peak에 오른 것이다(08:10; 3.7 Miles; 8780’; 2342’ Gain). 옛 토착민들의 전설에서 사람을 해친다고 믿어진 악마의 이름을 붙인 산이다. 아마도 주변의 지세가 워낙 위태롭게 험하니, 눈이나 얼음에 덮였을 때, 부실한 신발로 인해 이곳에서 추락사고가 빈발한 것에서 비롯된 전설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망루에 올라 잠시 간식을 먹으며 쉬면서 주위 경관을 즐긴다.

바로 조금 전에 지나온 등산로 안내판의 갈림길까지 내려가서 이제는 동북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간다. 이 지점에서 약 0.1마일 정도의 등산로 구간은 아찔한 암벽의 경치는 대단하지만, 눈이 쌓인 겨울에는 너무나 위험하다. 아차 한 발 삐끗하면 아찔한 절벽 아래로 그대로 추락할 수 있어 극력 피해야 할 두려운 구간이다. 이 짧은 0.1마일 구간 때문에 겨울철에 이 Tahquitz Peak을 Devils Slide Trail로 오르려 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래도 올라야 한다면, 반드시 South Ridge Trail을 이용하길 권한다.

왼쪽으로 또 다른 길 안내판을 만난다(08:37; 4.1 Miles; 8580’). 3거리이다. 왼쪽은 Saddle Junction쪽으로, 직진은 Tahquitz Valley 쪽으로 향하는데, 두 방향 길이 다 PCT이다. 우리는 직진한다. 다시 또 다른 길 안내판을 만난다(09:00; 4.9 Miles; 8095’). 직진은 Tahquitz Valley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꺾이는 길이 PCT의 연속으로 우리가 줄곧 가야 할 오늘 등산의 중심길이다.

이 갈림점에서 PCT를 따라 0.8마일을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돌과 나뭇가지들로 쌓은 Ducks들이 놓여있는 갈림길이 나온다(09:17; 5.7 Miles; 8266’). PCT를 벗어나 Red Tahquitz Peak을 가는 Spur Trail이다. Use Trail을 따라 산불로 온통 검게 타버린 나무들 사이로 0.5마일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붉은 색깔의 나지막한 봉우리가 나온다. 전망이 좋다. 그러나 이 봉을 지나 동남쪽 가까이 덜 붉은 또 다른 봉우리(09:48; 6.3 Miles; 8730’)가 있다. Sierra Club HPS에서 Red Tahquitz Peak으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이 봉우리이다. 동쪽으로 뻗어가는 거칠고 험악한 Desert Divide줄기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Antsell Rock의 삐죽 삐죽 날카롭기 그지없는 형세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Red Tahquitz Peak은, 2012년의 종주시 우리가 아주 엉뚱한 실수를 했던 산이기도 하다. 이 산에 잘 올랐었고, 올라왔던 짧은 Spur Trail로 하산하여 PCT로 복귀한 뒤에, 다음 봉우리인 Southwell을 향하여 PCT를 따라 동쪽으로 한 참(1.5 마일쯤?)을 갔었다. 이윽고 오른쪽으로 한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기에 당연히 Southwell Peak이라 단정하고, 길이 없는 가파른 비탈을 Bushwhacking으로 쉽지않게 정상에 올랐는데, 아뿔사, 조금 전에 올랐다가 하산했던 바로 그 Red Tahquitz Peak이 아닌가! 이 때의 황당함이라니! 상세지도를 지니지 않고, 왕성한 의욕만을 앞세워 대충 대충 산을 다니던 무모함이 빚은 촌극(희극?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세번째 봉인 Southwell Peak을 가는 정식 Route는 올라왔던 0.6마일의 Spur Trail을 따라 내려가 PCT를 따라 동쪽으로 가는 것이나, 오늘 우리는 Red Tahquitz Peak의 북동쪽 기슭을 따라 Bushwhacking으로 가파르고 거친 비탈을 내려가기로 의견을 모은다. 발을 딛기가 쉽진 않지만 첩경이라서 1.5마일이 넘을 정도의 거리와 그에 따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예리한 가시로 무장한 관목들과 독초 Poodle Dog Bush들이 빽빽하다.

무릎 아래로 숱한 상채기들과 신발속 통증을 ‘단축’의 댓가로 치루며, 이윽고 PCT선상에 내려선다(10:37; 6.6 Miles; 8164’). 주능선 주변바위들의 형세가 차츰 기묘하고 거치른 분위기를 띄어가고, 능선의 폭도 좁아지고 더 날카로워진다. 오른쪽 저 아래 멀리로 Coachella Valley일 사막가운데 Palm Springs, Desert Palm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끊어진 듯, 이어진 듯 드넓게 펼쳐져 있다. 능선의 고점으로 이어지는 PCT는, 울뚝 불뚝 솟아오른 큰 바위덩이들을 이리 저리 비껴가는 아슬 아슬한 형세를 연출한다.

이제 오른쪽으로 솟아있는, 오늘의 세번째 봉인 Southwell Peak을 오르기 위해 잠시 PCT를 벗어나야 하는 지점에 도달한다(11:26; 7.9 Miles; 7686’). 0.2마일 거리에 180’의 고도를 오르니, 이내 Southwell Peak정상이다(11:40; 8.1 Miles; 7865’). Tahquitz Peak Lookout의 Ranger였던 Tess M. Southwell에게 헌정된 산이다. 동쪽 가까이로 오늘 등산의 화룡점정이랄 수 있을 Antsell Rock의 날카로운 기세가 적잖이 두려움을 초래한다.

올라온 길보다는 다소 동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슭을 따라 PCT에 내려선다(12:05; 8.3 Miles; 7581’). 그 이후의 스윗치백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거리와 시간을 단축키 위해 두 차례 더 Short Cut을 한다. PCT에 내려서서 25분 정도를 나아간 지점에 이르니, 트럭만한 육중한 낙석이 PCT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다.

2019년 12월 21일에 Apple Canyon Trail에서 출발하여 Southwell Peak에 오르느라 PCT의 무단점유자인 이 바위덩이를 한 번 왕래한 경험이 있다. 진위여부는 알지 못하나, 낙석이 발생한 그 해에 PCT Hiker 1인이 이곳을 지나면서 추락사했다는 얘기가 돌았던 그 곳이다. 다행히 그 후 누군가(PCT Association?)가 암벽등산용 로프를 야무지게 잘 매어 놓았기에, 제이슨의 1대1 가이드를 받으며 전원 무사히 이 장애물을 잘 지난다.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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