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원 채우기 계획’

2020-09-29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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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대선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총 유효표의 57%를 얻어 선거인단 수로는 472 대 59, 주 수로는 42대 6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허버트 후버에 승리했다.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 차이였다. 대통령직뿐만 아니라 그 때까지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던 연방 상하원도 민주당으로 넘어왔다. 이에 고무된 루즈벨트와 민주당은 소위 ‘뉴 딜’로 불리는 개혁 입법을 밀어부쳤다.

그러나 이런 루즈벨트의 개혁 드라이브는 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루즈벨트의 개혁 입법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주안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연방 대법원이 잇따라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특히 ‘검은 월요일’로 불린 1935년 5월 27일 연방 대법원은 루즈벨트 행정부가 관련된 재판 3건 모두 만장일치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분노한 루즈벨트가 내놓은 것이 ‘법원 채우기 계획’(court packing plan)이다. ‘1937년의 사법 절차 개혁 법안’으로 이름 붙여진 이 계획의 내용은 연방 대법관이 70세 6개월이 지나도 자진해서 은퇴하지 않을 경우 최대 6명까지 더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연방 헌법은 대법관의 임기를 사실상 종신으로 하고 있지만 대법관의 수는 의회에 일임하고 있다. 1789년 처음 연방 대법원이 출범했을 때 대법관 수는 6명이었다. 그 후 5명에서 10명 사이를 오가다가 1869년 ‘사법부 법’이 제정되면서 현행 9명으로 정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민주당이 다수인 의회에서도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부통령이던 존 가너를 비롯 민주당 의원 가운데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대법관 수를 늘려 장악하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강했기 때문이다.

법 제정에는 실패했지만 이런 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판결의 흐름은 바뀌었다. 그전까지 최저 임금법이 위헌이라며 반대해 오던 오웬 로버츠 대법관은 워싱턴 주의 최저 임금법 관련 사건과 관련, 태도를 바꿔 연방 정부 편을 들어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주말 루스 긴즈버그 사망으로 공석이 된 대법관 자리에 에이미 배럿을 지명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2명의 아이티 입양아와 한 명의 다운 증후군 아이까지 7명의 어머니인 그녀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대법관 자격이 있다는 데는 공화 민주 양당 모두 이견이 없다.

명문 노터데임 법대 수석 졸업자로 보수의 아이콘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 밑에서 서기를 한 배럿은 ‘보수의 긴즈버그’라 불릴 정도로 총명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까지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노터데임대 교수 시절 장애인이 자기 수업을 들으며 어려움을 겪자 자식처럼 돌봐 주며 졸업을 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문제는 불과 대선을 한 달밖에 남겨두지 않은 지금 그녀를 인준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것이다. 4년 전 오바마가 메릭 갈런드를 스칼리아 후임으로 지명하자 이는 그 해 대선 승자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공화당은 아예 청문회조차 열지 않았다.

거기다 그녀는 민주당의 핵심 가치의 하나인 여성의 낙태권에 대해 부정적이다. 연방 헌법을 작성한 사람들의 원 취지를 존중해야 하며 이를 판사의 입맛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소위 ‘오리지널리즘’ 신봉자인 그녀는 헌법 어디에도 낙태권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4년 전 선례를 들며 지명과 인준을 대선 후로 미루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공화당이 이를 들을 가능성은 제로다. 주요 이슈의 최종 결정자인 연방 대법원을 수십년간 보수파가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리 없기 때문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없는 민주당 일각에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법원 채우기 계획’이다. 80여년 전 루즈벨트가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이 상하원과 백악관을 장악할 경우 대법관 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대법원에 민주당 사람을 넣을 수는 있겠지만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과 신뢰는 중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다.

미국이 얼마 전까지 그나마 민주적 모범 국가 소리를 들은 것은 양당 모두 어느 정도까지 선을 넘지 않는 금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관 지명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진흙탕 싸움은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나갔음을 말해주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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