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기독교의 번성보다 기적적인 사건도 드물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제자들도 뿔뿔이 도주하면서 그대로 끝나는 듯 싶었던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을 확신한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번성한다.
‘기독교의 흥기’라는 책을 쓴 라드니 스타크에 따르면 기원 40년 1,000여명 정도로 추산되던 기독교인 수는 불과 300년 뒤 로마 제국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2,500만 이상으로 늘어나며 313년 공인되면서 그후 1,000년 이상 유럽을 지배하는 종교로 남게 된다.
예수의 제자들은 갈릴리 어부나 세리 등 사회 하층민이었고 그 추종자들도 대부분 가난하고 핍박받던 소외 계급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종교가 어떻게 토착 종교를 몰아내고 로마 제국의 정신적 지주가 된 것일까. 거기에는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중요했겠지만 약자를 보살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도들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로마 시대에는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죽고 아프면 약 한 첩 못 써보고 앓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 사회에서 초대 기독교인들은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아픈 사람을 돌봐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교회에 가면 밥 먹을 수 있고 환자도 보살펴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그리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온갖 핍박에도 기독교가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기원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기독교인의 압박과 설움은 끝났다. 그러나 종교가 권력의 맛을 보면서 영혼은 타락하기 시작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만 해도 기독교를 공인했을뿐 이를 강제하지는 않고 신앙은 개인의 자유에 맡겼다.
그러나 그 후 379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집권 후 유일한 진리인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이교도들은 물론이고 같은 기독교내 이단으로 몰린 집단에 대한 폭행과 처형 등 무자비한 박해가 시작된다. 과거 신앙을 이유로 박해받던 세력이 이제는 박해하는 세력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로써 기독교를 통합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던 콘스탄티누스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런 분열상은 로마 몰락을 재촉하게 된다.
게르만 족의 침략으로 로마가 무너진 뒤에도 기독교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그 권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카노사의 굴욕’이다. 신성 로마 황제였던 헨리 4세는 사제를 누가 임명하느냐를 놓고 교황 그레고리 7세와 충돌했다 파문을 당하는 바람에 귀족들이 등을 돌리고 황위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 1077년 교황이 머물고 있는 카노사 성 밖에서 한겨울에 맨 발로 사흘을 빌어 겨우 용서를 받았다.
권력을 쥔 종교가 어느 정도까지 타락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알렉산더 6세다. 공인된 정부만 2명에 11명의 사생아를 둔 그는 교황청에서 섹스 파티를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1501년 ‘밤알의 만찬’(Banquet of Chestnuts)이라고 불린 이 행사에는 50명의 창녀들이 초청돼 교황과 그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나체 쇼와 난교 파티를 벌이고 뿌린 밤을 줍게 했다는 것이다.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의 횃불을 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다시 정치가 개입하면서 개혁은 전쟁으로 번지고 1648년 베스트팔리아 조약으로 일단락될 때까지 전쟁이 가장 심했던 독일에서만 인구의 1/3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이 수정 헌법 제1조에서 첫 마디에 국교 설립 금지와 종교 자유 제한 금지를 천명한 것은 이런 쓰라린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의 교회가 관광 명소로 전락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럼에도 지금 복음주의 기독교도들이 특정 정당, 그중에서도 가장 반기독교적인 삶을 살아온 루저 도널드를 전폭 지지하며 정치에 개입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가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다고 상습 성추행을 자백하고 성추행을 이유로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았으며 상습 허위 진술로 재산을 부풀려 천문학적 민사 사기 배상금을 물게 된 루저 도널드를 후원한단 말인가. 물론 교인 수가 지속적으로 줄며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을 막겠다는 다급한 심정은 알겠으나 루저 도널드 같은 썩은 동아줄을 잡는 것은 몰락을 재촉하는 길일 뿐이다.
더 기막힌 것은 그런 도널드가 지난 주부터 부활절을 앞두고 59달러 99센트에 성경을 팔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미국인은 집에 성경을 필요로 한다. 나도 많이 갖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우리는 다시금 미국이 기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는데 이는 사탄이 예수 믿으라고 설교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디선가 부활한 예수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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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