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탈레스, 일식, 그리고 우주와 나

2024-04-09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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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한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사실 그리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것으로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는 탈레스가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 터키 땅인 밀레투스에서 태어난 그는 그리스 ‘7 현자’중 으뜸으로 꼽힌다. 그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이 주장은 단지 사물의 기원이 물이라는 것을 떠나 복잡한 삼라만상이 사실은 단순한 근본 물질로 이뤄졌다는 철학적 통찰의 기원이 된다.

그에게는 여러 일화가 남아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기상 상태를 살펴본 후 그 해 올리브가 풍년이 들 것을 예상하고 올리브 압축기를 모두 사들인 후 풍년이 들자 이를 비싸게 팔거나 빌려주고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는 돈에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철학자도 마음만 먹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번 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눴다고 한다.


또 어느 날 너무나 별을 열심히 관측하다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를 본 여종이 하늘 일에 미쳐 발 밑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놀렸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는 일식을 예측한 첫 번째 사람이 된다. 기원전 585년 5월 28일 터키 일대에 개기일식이 일어났는데 그가 이를 미리 맞췄다는 것이다. 당시 리디아와 메디아는 전쟁 중이었는데 이를 보고 놀라 휴전 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탈레스 이전에는 일식 등 이해할 수 없는 천체 현상이 일어나면 ‘하늘에 있는 개가 해를 먹었다’느니 ‘하늘이 노했다’느니 신화적이고 신학적인 설명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탈레스 이후 신화와 신학이 아니라 이성과 과학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쪽이 힘을 얻게 됐다. 지금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과학의 기원이 그리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미한 인간이 천체의 움직임을 살펴 그 숨은 원리를 알아내고 개기 일식 같은 장엄한 현상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자신감을 증폭시키고 겉으로는 혼란스러운 자연 현상 뒤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원칙과 질서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강화시켜 줬을 것이다.

천상 최대의 쇼인 개기 일식이 8일 멕시코에서 메인주까지 북미주 지역을 관통하며 관측됐다. 달이 태양을 모두 가리는 ‘완전 일식의 길’(path of totality)의 길에는 3천만명, 이로부터 200마일 인근에는 1억5천만명의 미국인이 살고 있다. 이를 보기 위해 여행자들이 몰려들면서 일부 지역은 호텔 방값이 10배 가까이 오르기도 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가 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 전역을 가로지르는 개기 일식은 2017년 8월 21일 이후 처음인데 그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번 일식은 ‘완전 일식의 길’ 폭도 60~70 마일에서 108~120 마일로 넓어지고 일식 진행 시간도 2분 42초에서 4분 28초로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개기 일식은 18개월에 한번씩 지구 어디선가 일어나고 어떤 장소도 400년에 한 번은 이를 경험한다. 달과 해 앞에서 지구의 모든 표면은 평등한 셈이다. 달이 한 달에 한번 지구 주위를 도는데 이처럼 개기 일식이 드문 것은 달의 공전면과 지구의 공전면이 5도 정도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개기 일식은 이 면이 일치할 때만 일어난다.

달은 원이 아니라 타원형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도는데 달이 지구에서 멀어질 때는 태양을 완전히 가리지 못해 개기 일식을 볼 수 없다. 또 달의 인력으로 인한 조류의 움직임 때문에 지구의 회전 속도는 조금씩 느려지며 달은 지구로부터 매년 1.5 인치씩 멀어진다. 이렇게 6억년이 지나면 달은 더 이상 해를 가릴 수 없게 돼 개기 일식은 사라진다.

밝은 대낮에 갑자기 달이 해를 침식하면서 온천지가 암흑으로 변하고 별이 빛나는 광경은 한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하는 강렬한 경험이다. 텍사스에 사는 레티샤 페러(63) 같은 사람이 지난 26년간 지구 곳곳을 누비며 20번이나 개기 일식 체험을 한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허둥지둥 하루하루 살기 바쁜 우리 모두가 태양과 달, 지구와 한 줄로 맺어진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짧은 시간이지만 이처럼 감동적으로 느끼게 하는 사건은 없기 때문이다. 다음 미국내 개기 일식 쇼는 2044년 8월 23일 벌어진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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