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곳니’,‘황야의 7인’ 그리고 ‘멋진 4’

2024-04-16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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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니’(FANG)이라는 단어가 증시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3년이다. 경제 전문 케이블 방송인 CNBC의 짐 크레이머는 미국 주식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으로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들고 이들의 앞글자를 따 ‘FANG’이라고 불렀다. 훗날 애플이 추가돼 ‘FAANG’으로 불리면서 이들 다섯이 미국을 대표하는기업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치가 넷플릭스를 압도하고 페이스북이 메타로, 구글이 알파벳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증시 주도 기업을 MAMAA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MAMAA라는 이름이 별 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과 관계없이 이들 기업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2017년에 벌써 이들의 시가총액은 3조 3천억 달러로 미 GDP의 1/6, 나스닥 100 지수의 절반을 차지했다. 페이스북과 함께 온라인 광고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구글은 2020년 시가 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섰고 페이스북은 2021년 이를 돌파했다. 2022년 최고치에서 70% 이상 폭락했던 페이스북은 올 초 다시 1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아직까지 폭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온라인 시장의 대명사 아마존은 2020년 시가 총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선 후 2022년 한 때 최고치 절반 이하로 떨어졌으나 다시 승승장구,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선두주자 애플은 2018년 상장 기업으로는 처음 시가 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고 2020년에는 2조, 2022년에는 3조 달러를 넘었다. 애플의 영원한 맞수인 마이크로소프트는 2019년 1조 달러를 넘긴 후 2021년 2조, 올해는 3조 달러를 돌파하며 잠시나마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들 5개 회사에 인공지능에 필수적인 컴퓨터 칩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와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며 일론 머스크를 최고 부자로 만들어준 테슬라를 합쳐 ‘황야의 7인’(Magnificent 7)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이름은 동명의 서부 활극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엔비디아는 2023년 1조 달러를 넘은 후 올 들어 2조 달러를 돌파, 아마존과 구글을 제치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다음 3위의 시가 총액을 기록했다. 테슬라는 2021년 1조 달러를 돌파했으나 그 후 70%가 넘는 폭락을 경험했고 한 때 회복되는듯 하더니 요즘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들 7개 주식의 시가 총액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500대 기업을 대표하는 S&P 500지수 총액의 30%가 이들로 이뤄져 있고 작년 S&P 500 상승폭의 2/3가 이들 덕이다. 미국을 뺀 G 20국가 중 상장 기업 주가 총액을 모두 합해도 이들 7개 기업의 합인 13조 달러보다 많은 것은 중국과 일본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나 운명을 같이 한다는 보장은 없다. 올 1/4분기 이들의 주가 동향이 차이를 보이자 실적이 부진한 구글(11%), 애플(-12%), 테슬라(-33%)를 빼고 아마존(19%), 페이스북(41%), 마이크로소프트(12%), 엔비디아(81%)만을 ‘멋진 4’(Fabulous 4)로 부르기 시작하고 있다.

이들 주식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이들의 이례적인 성장이다. 불과 수년 사이 시가 총액이 1조에서 2조 달러씩 늘었는데 이는 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들의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런 예외적인 현상이 오래 가기는 힘들다.

지난 4년 동안 6배가 올라 최고 수익률을 기록한 엔비디아의 경우 1999년 상장한 후 14번이나 반값으로 폭락했으며 2018년과 2022년에도 반토막을 경험했다. 한 때 투자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테슬라가 죽을 쑤고 있는 것도 하이텍 기업의 부침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 준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시장의 폭’(market breadth)이다. 건강한 시장은 최고치를 기록하는 주식의 수가 점점 늘어나지만 그렇지 않은 시장은 줄어든다. 올 미 증시는 상승세를 타고 있으나 그 대부분은 ‘멋진 4’에 의존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엔비디아 단 2개 주식이 전체 주가 상승의 1/3을 견인하고 있다. 1월 이후 오르는 주식 수는 계속 줄고 3월 들어 나스닥은 10일 평균 지수 이하로 추락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주식이 폭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심할 때가 왔다는 경고임은 분명하다.

지난 금요일 다우 존스 산업 지수는 476 포인트, 지난 주 전체로는 921 포인트 하락했는데 이는 작년 3월 이후 최대폭 하락이다. S&P 500 개 주식 중 460개가 내려갔고 11개 전 분야가 작년 9월 이후 처음 모두 떨어졌다. 인플레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아 금리 인하는 늦어질 전망이고 중동전은 확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투자가의 주의가 필요한 때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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