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정초, 50세의 건설노동자, 웨슬리 오트리는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4살, 6살 두 딸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 근처에 서있던 한 청년이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청년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다음 순간 플랫폼에서 굴러 선로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마침 지하철이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진입하자 오트리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에게 허용된 공간은 1피트 깊이. 청년을 몸으로 감싸며 죽을힘을 다해 내리눌렀다. 사태를 파악한 기관사가 급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열차를 멈출 수는 없었다. 열차 5량이 그가 쓴 파란색 야구모자에 윤활유를 문지르며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 위를 지나고 나서야 정차했다.
그가 “우리 괜찮아요” 소리치자 플랫폼에서는 감동의 눈물과 환호, 박수가 터져 나왔다. 뉴욕 필름 아카데미 학생이던 청년은 병원으로 옮겨져 찰과상을 치료받았고, 선행의 주인공인 오트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딸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무슨 굉장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봤을 뿐이지요. 옳다고 생각되는 걸 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두발 딛고 섰던 삶의 플랫폼은 붕괴되고, 열차가 언제 들이닥쳐 생명을 위협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뉴욕 청년이 맞았던 위기는 상징적으로 이 시대의 보편적 위기가 되었다. 우리 삶의 기반들이 무너졌다. 보건기반이 무너져 건강을 위협받고, 경제기반이 무너져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도 두렵지만 더 급박한 것은 의식주 해결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부분 직장들이 폐쇄되면서 경제는 마비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갈지 모를 이런 사태에 대비해 전문가들은 “은행계좌에 최소한 6개월 치 생활비를 현금으로 보유하라”고 조언한다. 조언은 허탈감과 박탈감을 자극하며 상처로 남는다. 6개월 치라니 ….
지난해 발표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조사에 따르면 400달러의 비상지출이 생길 경우 미국 성인들 중 40%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비상금 400달러가 없다는 말이다. 역시 지난해 찰스 스왑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 과반수(59%)는 그달 봉급체크로 그달을 살아가는 형편이다. 코로나19 경제폭격으로 봉급체크는 날아가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생명과 생계가 동시에 선로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어떻게 이 위난을 헤쳐 나갈 것인가. 생면부지의 청년을 작은 인연도 없는 오트리가 구해냈듯, 낯선 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인간의 선한 의지, 인도주의가 힘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역사 곳곳에 위기는 있었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과 1차·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한국은 6.25 변란을 겪었다. 허리케인, 홍수, 지진 등 천재지변은 수시로 찾아왔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다는 것은 집단으로서 이 모두를 극복해냈다는 것이고 그 바탕에는 인도주의가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선으로 나가는 용기, 가진 것을 나누는 희생, 남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는 공감 …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인류의 안녕이라는 큰 그림을 부지불식간에 ‘나의 일’로 여기게 되는 특별한 시기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주 ‘따로. 하지만 함께(APART. NOT ALONE)’라는 특집을 게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합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세계 중앙 주방(World Central Kitchen)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재난 현장마다 달려가 식사를 나눠주는 유명 셰프에서부터 학교가 문 닫으면서 아침점심을 굶게 된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스쿨버스 운전기사 등 미 전국에서 일어나는 나눔의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나눔은 타자들을 연결시키고 그런 연대감이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의료진이다. 가족들과 떨어진 채 밀려드는 환자, 부족한 장비, 빠듯한 인력으로 열악한 조건 속에서 밤낮없이 고투하고 있다. 안락한 노후생활을 하던 은퇴 의사 간호사들도 고령자 감염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뉴욕 지하철의 선한 사마리아인, 오트리가 말했던 ‘옳은 일’을 저마다 하고 있다. 칩거 명령에 집안으로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전에 급급하던 마음이 진정되자 고통 받는 이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영업을 중지한 식당들은 닫힌 주방을 열고 음식을 만들어 아동들이나 병원의료진 혹은 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제공하고, 외출할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 시장을 봐주는 봉사자들이 있는가 하면 집에서 마스크를 만들어 나눠주기도 한다.
이런 나눔, 헌신은 개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커뮤니티 차원의 선한 의지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세상에 온기를 준다. 그렇게 우리는 이 난국을 또 헤쳐 나갈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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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