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멀쩡했던 그 남자 / 오늘은 뒤뚱대며 걷네 / 삐뚤삐뚤 걷는 그 모습 / 내 목구멍 싸아하게 만드네 / 여직껏 오십 평생 살아 오면서 / 한번도 사랑한다는 그 말 하지 못했네 / 이제 더 늦기전 사랑해! 사랑해! / 그 말 해준다면 / 그는 웃을까 울어버릴까
이 시는 요즘 갑자기 변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쓴 시다. 며칠 전 이 시를 가지고 시인들이 모이는 시 모임에 나갔다. 사람들은 거의가 미국인들이다. 라스모어에는 클럽만 이백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중에 이 시 모임도 하나다.
한 열다섯명 정도가 모였는데 그중에는 시인도 있었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앞에 앉은 노인이 자신의 나이가 105살이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다시 한번 그 노인을 쳐다보았다. 또 그 노인은 시를 수십년 써 왔다고 하면서 얼마전 시 공모전에 나가서 당선이 되어 약 삼백불 정도를 받았다고 자랑도 했다.
그 노인이 먼저 자신의 시를 낭독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구나. 아침에 샤워를 할 때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 몸이 떨리도록 행복하다. 내일은 몰라도 오늘은 마냥 좋다.
대강 이런 식의 시였다. 나는 그 시를 들으면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그 시가 그리 대단해서가 아니라 백살이 넘는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와서도 너무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고 조금도 기죽지 않은 그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
보통 사람들은 백살이란 나이를 살지도 못한다. 살아봤댔자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남들의 시중을 들어야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나인데 자신이 쓴 시를 직접 들고 와서 개선 장군처럼 당당하게 시낭독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요즘 내가 몇살까지 칼럼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가끔 모르는 사람들이 내 수십년 된 독자라고 하면서 전화를 해 오고 또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글을 쓰는 보람을 느낀다. 작년 7월에 내가 한국일보에 쓴 “친구야! 놀자!”라는 글이 한국에서, 또 미국에서 상당히 떠서 나도 깜짝 놀랐다. 작년 9월 내가 한국에 나갔을때 내 대학 동창들이 그 글을 가지고 와서 내게 보여주면서 “이 글 네 글이 맞지?”하며 물어보아 그때야 내가 쓴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았고 또 미국에서도 여러 주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친구나 친지들에게 그 글을 보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글이 내 수필 중에서 제일 잘 쓴 글이라고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가 팔십이 넘었지만 아직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아침을 먹으러 어디로 갈까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산다는 그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요즘은 글로벌 시대라 인터넷에 한번 뜨면 이 미국이나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체험했고, 그 위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나는 그날 그 시 모임에서 남편에 대한 자작시를 낭독했고 큰 박수를 받았다. 나는 그 동안 써 온 미 발표작이 시만 해도 백편이 넘는다. 처음엔 한국어로 읽었고 나중에는 영어로 읽었다. 사람들이 물었다. 정말 한번도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냐고.
나는 잠깐 간단하게 미국인과 한국인의 정서의 차이를 설명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휠링을 늘 다 말하고 살지만 한국인들은 보통 속으론 생각하고 노골적인 표현은 잘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아이 러브 유!’는 쉽게 해도 ‘사랑해요!’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고. 남편이 내게 ‘아이 러브유!’를 말할 때면 나는 마지 못해 ‘미투!’라고 말해주었다고.
그 말을 듣고 미국인들이 막 웃었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노인은 1953년에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24년을 더 살아야 105세가 된다. 물론 그만큼 살 자신도 없지만 그렇게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그 백오세된 그 노인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었고 지금도 사는 의미를 찾아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내 주위에는 나보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주위에 장수하는 사람들은 첫째가 유전자를 잘 타고 나야하고, 둘째는 소식, 그리고 운동이라고 의사들은 누누히 말한다.
내 남편은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생을 일하고 성실했지만 운동에는 게을렀다. 그리고 술을 좋아했으니 그게 지금의 자기를 만든 것이다. 아직 나는 이 시를 남편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언제 보여줄 지 나도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요즘 나는 그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는 언제나 ‘땡큐!땡큐’하며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는 것이라면 나도 이젠 그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늘 당신을 시랑했노라고 말해줘야겠다. 다음 달 즉 8월14일이 우리들이 오십년을 해로한 금혼식날이다. 그날 이 시를 아이들 앞에서 낭독해 준다면 그는 아마 기뻐서 웃을까 아니면 정말 울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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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