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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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열성유전자의 열정

2019-05-21 (화) 12:00:00 김예은(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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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세상에, 어머나.” 학창시절 나는 국어시간이 제일 좋았다. 내 글에 무수히 많은 감탄사를 뿜어내주는 국어선생님들 덕분이었다. 그후로 자신감이 생긴 나는 세상에 내 글을 뽐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활기찼던 다짐과 함께 나이가 차자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글을 잘 쓰고 여러 분야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마치 얼떨결에 막 뛰던 우물 안의 개구리가 그제서야 세상에 나와, 준비가 안된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내 글이 구리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들끓어 있었다. 나의 열정이, 나의 꿈이 이뤄지기 위해. 그래서 항상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이루어지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초조해하며. 그 안에서 남을 부러워하기도, 본이 되는 이를 표본삼아 추종해가며. 어른들은 그런 과정에서 내 다짐과 소망이 사그러지고 말 거라고,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결국 해내고 말리라는 내 마음가짐은 시간이 지나자 사그러지고 말았다. 라면이 끓고 물이 졸아 면이 불듯, 나의 꿈도 부풀었으면 좋았으련만. 어쩌면 그것은 신께서 주신, 삶을 더욱 유연하게 살아가라는 뜻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계가 있는, 어쩌면 지정석이 마련된 꼭대기 자리에 모두가 다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라, 누군가와 엿 바꿔먹을 도구 또한 글재주 하나이기에, 여전히 난 내 열정에 의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문인들이 일본어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한국어 글실력으로 찬사를 받았던 것처럼, 또한 이과생들이 문과생보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것처럼 다방면으로 활약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나대로 한 우물을 파려고 한다. 그러면 그 물이 흘러 범람하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내 삽인 연필을 가지고 그 우물을 파려고 한다. 그것이 내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내 선택에 후회없을 거라 확신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내 열성유전자가 열성적으로 나를 세상으로 밀어낸다.

<김예은(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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