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 인적자원 활용부터 시작하라

2019-05-16 (목) 이용석 스탠포드 아시아태평양연구소 한국학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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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적자원 활용부터 시작하라

이용석 스탠포드 아시아태평양연구소 한국학 부소장

미국에서 북한 이슈를 다루는 전문가들 사이에는 대북 피로감 (North Korea Fatigue)이라는 말이 있다. 북핵으로 인한 북미 간의 갈등 고조, 대화를 통한 일시적 갈등 해소, 외교적 해법의 실패,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과 갈등 국면에 대한 회의감과 피로감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대북 피로감은 정책에까지 반영되어, 오바마 정부 때는 북한이 진지하게 먼저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 한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미국의 공식적인 대북 정책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북미 관계의 새로운 길이 모색되는 듯 했으나, 하노이 협상 결렬로 인해 다시 대립과 갈등의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아쉽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미 간 교착상태를 해결할 만한 새로운 대안도 없다. 현실성, 국내 정치 상황, 대북 원칙 등 고려해야할 변수가 많은 만큼 전문가들이 정책 제안을 하는 데에도 많은 제약이 있다.


오히려 젊은 학생들이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번 학기 동아시아 경제개발 및 현황이라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북한이 경제성장을 위해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해 보라는 과제를 내 보았다. 과거에도 비슷한 과제를 낸 적이 있지만, 북한이 경제발전을 주요 국가전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진 만큼 이번에는 더 비중을 두어 북한 정부에 제안하는 정책 브리프 형식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미국이 현 북한정부와의 물리적 충돌을 배제한다는 한 가지 전제 조건 하에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 보라고 요구하였다.

과제를 채점하면서 필자도 현 상황에서 북한 경제개발의 방향과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핵개발 추진으로 인해 세계와 단절되어 있고 경제제재로 무역과 투자가 미미한 상황에서 북한이 추진할 수 있는 정책 한 가지를 조언해 준다면 무엇일까? 북한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과거 한국의 명문 중고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해당 학교에 지원을 하고 그 학교의 자체 선발고사를 치러야 했다. 지원은 전국 어디에서나, 누구나 할 수 있고 성적만 좋으면 입학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평준화에 따른 중고교 서열화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 또는 미국 사회에서 전국적으로 실행하기에 적합한 제도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효율성이 낮고 자본도 없는 북한 상황에는 효과적인 인재 발굴 정책이라고 본다.

북한은 70년 가까이 계획경제를 실행하면서 개개인의 역량이 아닌 이념, 충성도 그리고 공산당원이라는 특권으로 개인과 가족의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었다. 유능하고 잠재력 있는 많은 인재들이 특권층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회이다. 등소평이 중국을 집권한 후 추진한 가장 중요한 개혁 중 하나가 바로 지방 및 중앙정부에서 능력 기반으로 인재를 등용한 정책(meritocracy)이었다.

특권이 아닌 능력을 기반으로 한 인재 등용과 함께, 북한은 인재들의 이주 제한을 단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현재 특권층에게 부여되는 평양 거주권을 지방의 유망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에게 점진적으로 확장시키고, 또 시골의 인재들이 지방정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은 원칙적으로 주민의 이주가 금지되어 있다.

계획경제 체제의 근간에는 정부의 노동과 자본의 직접적인 배분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만큼 효율적으로 노동과 자본을 배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수십년 전 공산주의의 몰락이 이미 증명하였다. 중국도 그래서 결국 경제만큼은 시장경제체제로 변화한 것이다.

북한정부가 계획경제의 통제권을 시장에 완전히 놓아주지는 않겠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할 필요성이 있다. 그 중 가장 쉬운 것이 북한 내에 이미 존재하는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지방과 시골에 있는 인재가 생산성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여 경제, 정치, 행정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미 2차 협상 결렬 이후, 북한은 북핵을 포기하지 않은 채 경제성장을 추구할 수도 있다고 큰소리 쳤다. 과연 핵을 포기하지 않고 경제성장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우선은 북한 내에 존재하는 인재들을 잘 발굴하고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인재가 많아지면 북한의 경제적 효율성을 향상 시킬 수도 있겠지만, 북핵 이슈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외교적 해법을 찾을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이용석 스탠포드 아시아태평양연구소 한국학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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