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웨이 사태, 미중이 한국에 ‘러브콜’?

2019-05-30 (목)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작게 크게
화웨이 사태, 미중이 한국에 ‘러브콜’?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미국이 지난 16일 화웨이를 ‘수출제한 블랙리스트’에 올린 이후, 한국정부에도 화웨이 제재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언론은 화웨이 설비수입을 중단하면 한국기업의 손실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보복조치를 경고하고 있다. 과거 사드 문제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형국이다.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었을 때 한국은 1년 넘게 결정을 못하며 혼란 속에 우유부단한 자세를 보였다. 한국은 그에 대해 큰 대가를 지불했다.

당시 한국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이 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인식을 더 악화시켰다. 중국은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기회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적인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국제관계의 현실정치에서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종종 유익하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2015년 5월 30일). 윤 장관은 동아시아 지정학에서 한반도가 미중 사이에서 갖고 있는 전략적 가치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러브콜’을 받고 있는 한국이 왜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했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중국은 한국이 사드 문제에 있어 미국이 아닌 중국 쪽으로 기울도록 경제적 유인책과 정치적 양보를 퍼부으면서 한국에 읍소하는 ‘구애 작전’을 폈어야 하지 않았을까?

중국은 그렇게 하기는커녕 한국에 대해 다양한 보복조치를 취했다.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여론전과 심리전을 펼쳤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였고, 통관 지연, 위생검사 등으로 공포를 유발했으며, 중국인 관광객을 막았고, 학회와 교류 프로그램을 취소했으며, 정부 간 채널을 폐쇄하였다. 이건 확연히 ‘러브콜’이 아니다. 중국외교의 속내를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주변국을 3개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첫째, 일본과 같은 미국의 확연한 우방국들이다. 중국은 이런 나라들을 ‘비즈니스적인’ 태도로 냉담하게 대한다. 최소한의 필요한 접촉을 유지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때는 관계개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본을 ‘투명인간’ 취급했던 중국이 7년 만에 일본과 정상회담을 연 이유다.

두 번째 그룹은 필리핀과 같은 ‘친중(親中) 국가’다. 중국은 경제적 이익을 그들에게 제공하여 중국 편으로 묶어둔다.

세 번째 그룹은 한국 같은 ‘기회주의적’ 국가들이다. 경제적 이익으로 그들을 유인하기는커녕 중국은 오히려 혼쭐을 낸다. 사드 갈등은 그 첫 ‘시범 케이스’였다. 다른 주변국들에게 보내는 경고성이다. 중국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어떻게 되는지를 한국을 본보기삼아 보여준 것이다. 한국을 보복하지 않으면 역내 다른 나라들도 향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 중국의 경고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를 겁주기 위해 닭을 죽인다”는 고전적인 전술이다.

사드 파동 당시 한국정부는 중국의 이러한 전략적 속내를 읽지 못한 듯하다. 당시 상하이를 방문했던 한국의 한 고위급인사는 중국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감히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역은 본질적으로 상호적이기에 중국이 한국에 보복을 하면 중국에게도 손해가 갈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든 것이다. 그의 발언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보복 의지를 더욱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 문재인 정부는 사드 파동을 전임 정부로부터 물려받으며 출범했다. 이번 화웨이 사건을 놓고 다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실존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국이 자기편을 들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미중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가능한 한 낮은 키 모드로’ 대처할 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low-key‘ 전략이 현실적이냐 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동맹국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불쾌해 할 것 같다. 중국 또한 사드의 경험을 반추해보면 만약 한국이 화웨이를 거부한다면 십중팔구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다. 분명히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외교는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프레임으로 이미 들어섰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전략적 프레임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미중 사이에서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시대는 끝났다.

향후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안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한국이 과연 그럴 힘이 있는 지에 대한 객관적 점검도 해봐야 한다. 미중 갈등은 앞으로 북한 이슈보다 더 한국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