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과 생산성

2019-03-21 (목) 이용석 스탠포드대학 한국학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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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학교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강좌는 ‘심리학과 좋은 삶(Psychology and Good Life)’이라는 심리학 강좌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행복학 개론(Happiness 101)’ 또는 ‘행복 수업(The Happiness Class)’으로 통용될 만큼, 좋은 삶을 사는 방법으로 행복을 제시하는 수업이다. 작년 한해에만 학부생의 4분의 1 정도인 1,200명이 수강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수업을 가르치는 로리 산토스 교수는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본인의 행복은 뒤로 한 채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바쁜 생활을 살다 보니 스트레스 받고 무감각한 삶을 살고 있어 본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심리학자이지만 본인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껴 본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어떻게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공유하며 본인의 행복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로 강의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해당 강좌를 온라인으로도 제공하고 있어 일반인들도 무료로 쉽게 청강할 수 있다.

근래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행복에 대한 연구 및 강좌가 급증하고 있다. 현대인이 그만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들 강좌 및 많은 행복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돈, 좋은 성적, 좋은 직장, 결혼, 사치품, 아름다운 외모 등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행복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행복도가 다르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을 비교한다거나, 외모가 멋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면 연구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연구들은 대부분 추적 연구 형태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돈이 행복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유산을 물려받았다거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전후 행복도를 측정하고, 외모가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동일인의 성형 수술 전후의 행복도를 추적하여 비교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유산을 물려받은 후에도 성형 수술을 받은 후에도 사람들의 행복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이다. 돈, 사치품, 외모,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유달리 추구하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꽤 치명적인 연구 결과과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많은 것들이 정작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기구들이 발표하는 세계행복지수를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는데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더욱 하락하는 추세이다. 결국, 많은 한국인들이 제한된 시간, 돈, 열정을 들여서도 행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니 허무하면서 안타까운 결과다.

행복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또 하나의 고질적 문제는 낮은 노동 생산성이다.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산출하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미국의 절반 수준을 밑돌고, 생산성이 가장 높은 북구권 국가들의 40% 수준에 머문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은 공감할 만한 결과이다. 필자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야근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만약 모든 직원이 집중하면 훨씬 짧은 시간에 일을 처리하고, 절약된 시간을 개인의 역량 개발, 취미활동, 여가생활, 인간관계 등을 위해 쓸 수 있을 텐데, 제도 탓인지 문화 탓인지 그러지 못하는 사회였다.

이러한 문제점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의 큰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국정부는 법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비효율적인 한국 기업문화 또는 인력경영 방식을 정부가 주도해서 바꿔 보겠다는 의도였지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정한 것이 아닌 만큼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행복도가 노동 생산성을 증진시킨다는 최근 연구결과가 있다. 무작위로 선정된 근로자들에게 기분 좋아지는 짧은 영화를 보게 한 다음 노동생산성을 측정한 연구인데, 영화를 본 후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약 10~12 % 증가하였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는 새로운 기술 도입, 새로운 경영 방식 등 전통적인 경제학에 기반을 둔 방법도 있지만, 이러한 방법은 이미 한국에서 시도 되었고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한국인의 행복도를 증진시킴으로써 노동 생산성 향상을 모색하는 방법은 어떨까? 국가적 차원에서는 노동 생산성 증가라는 이점이 있지만, 개개인이 더 행복해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일대 행복 수업의 핵심은, 우리가 흔히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행복을 주지 않고, 행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 친절해지기 위해, 그리고 본인 스스로 성장하고 향상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노력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행복 연구 및 교육이 활성화되어, 행복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노력과 실천이 보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사회로 이어지는 경로가 되기를 바래본다.
행복과 생산성

이용석 스탠포드대학 한국학 부소장



<이용석 스탠포드대학 한국학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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