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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 괜찮으세요?

2019-05-08 (수) 12:00:00 김옥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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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대신 괜찮으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보다 괜찮치 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9년전 이곳 라스모어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만해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멀쩡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까이는 내 남편부터 너무 달라져가고 있기 때문에 나도 이제는 많은 시간을 남편 옆에 붙어서 밥도 챙겨주고 여로모로 도와줘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사람들이 변하려면 눈깜짝할 사이다. 이제 우리네 나이들은 오늘이 괜찮아도 내일은 알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얼마 전 내 팔십 평생에 처음으로 지독한 감기, 아니 독감으로 굉장히 고생을 했다. 나는 그동안 일주일을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는데 내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참 별일이네! 나이는 어쩔수가 없구나!’하며 돌아갔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올 겨울 독감으로 많은 고생들을 했다. 거의가 한달 이상을 아팠다고 한다. 아마 이젠 나이가 들어서 면역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졌나 보다 하고 만나면 서로 하소연이다.

내 이웃이며 가까운 친구 남편도 팔십대 초반인데 그동안 건강 관리를 잘해서 누구보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하루 아침에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얼마 전 응급실에 네번이나 끌려갔다.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서 심장 박동이 너무 빨리 뛰는게 문제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심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고 보니 아무도 이젠 건강에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무릎에 문제가 생겨서 걷기는 걷는데 아프니까 질질 끌거나 절룩거린다. 지팡이를 짚는 것은 예사고 워커를 사용한다. 어제 남편이 부엌에서 넘어졌다.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다가 다리가 부실하니까 기우뚱 하며 중심을 잃은 것이다.

남편의 몸무게가 175파운드 정도인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일으킬 수가 없었다. 결국 남편은 기어서 소파있는데 까지 가서 겨우 무릎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아이들이 이미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절대로 엄마는 아빠를 힘으로 일으키거나 끌고 가거나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 생각났다. 엄마까지 허리를 다치면 큰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요즘 너무 고마운 생각이 든다. 아들과 딸이 번갈아 가며 자주 찾아오고 지 아빠를 챙긴다. 아빠의 상태가 더 나빠지면 도우미를 쓰자고 한다. 비용은 저희들이 부담을 할테니까 아무 걱정도 말라고 한다.

참 세상은 돌고 돈다고 언제 아이들이 이만큼 자라서 성인이 되고 이젠 지 부모들을 챙기는 나이가 되고 보니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도 든다. “엄마! 이젠 우리 차례잖아요? 옛날엔 엄마 아빠가 우릴 길렀지만 이젠 우리들이 엄마 아빠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막내 아들 말에 난 속으로 눈물이 났다. 다 자란 자식들은 울타리라고 한 사람들의 말이 생각나며 참 우린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전에 아이들이 새차를 사주었다. 그동안 내가 타고 다니던 차가 이젠 너무 오래 돼서 새차로 바꾸는게 오히려 절약하는 것이란다. 차는 작아졌지만 신형이라 그런지 이전 차보다 훨씬 좋다. 차에서 전화도 할 수 있다. 나는 새차를 타고 프리웨이를 달리면서 ‘참, 인생은 이래서 재미있는 거야!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잖아! 이래서 살만한거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오랫만에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한 이주 전 그동안 우리들의 이웃이며 친구였던 교수님 한분이 요양원으로 떠나갔다. 뇌암으로 판정이 나서 그동안 호스피스가 돌보고 있었다. 한 이년 전만 해도 하루에 몇 마일을 걸으셨던 분이다. 늘 조용하고 말없이 미소만 짓던 분이 우리 몇 명이 병 문안차 찾아갔더니우리를 보고 얼굴을 실룩이며 우시려고 한다.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마음이 짠했다. 그분은 그래도 형편이 좋아서 최고 시설의 요양원으로 가셔서 잘 계신다고 얘기를 들었다.

한때는 아침 마다 모여서 운동도 같이 하고, 커피도 함께 마시고 간단한 아침 식사도 나누던 관계였는데 또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직 이 라스모어에 함께 살면서 보통 때처럼 먹고 운동하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아직 자신의 발로 걷고, 운전도 하고 자신의 손으로 밥도 챙겨 먹으며 지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인이 병원에서 한달만 지내면 모든 근육이 다 소멸된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그래서 매일처럼 걷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근육이 손상되면 힘이 없어지고 다리가 부실해서 넘어진다는 얘기다. 넘어지면 그때는 병원으로 직행이다. 병원에서 병이 나으면 다행이지만 많은 노인들이 폐렴을 얻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오늘도 나는 6시 반이면 집을 나선다.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언덕 아래에 있는 디아블로 룸으로 간다. 아침 공기가 너무 신선해 이럴 때마다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내일 일은 아직 모르지만 운동도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일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아직 내 옆에 있음에 또 감사한다. “괜찮으세요?” 누가 이렇게 물으면 “아직은요”라고 대답할 수 있어 정말 괜찮다.

<김옥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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