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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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그 시대에 걸맞는 사람

2019-05-07 (화) 12:00:00 김예은(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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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오후는 어쩐지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했다. 일기예보를 미처 보지 못했던 나는 아직도 한겨울인 것마냥 윗옷에 겉옷을 더 껴입었다. 내 옆의 친구는 옷으로 날씨를 증명해보이듯 반팔과 반바지로 그 더위에 승복했다. 환절기 때라 그런지 날씨를 가늠하지 못하고 날씨에 비위 맞추듯 나는 그 온도에 맞게 입으려 했지만, 그날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시원하게 옷을 입고 온 그 친구를 내심 부러워했다. 그렇게 이른 오후가 지나고 저녁이 돼서 그 친구를 또 보게 되었을 때는 낮에 느꼈던 그 더움에 무덤덤해질 만큼 춥고 쌀쌀했다. 그런 오후가 돼서야 겹겹이 입은 내 옷차림이 알맞게 되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따스한 햇살에 두껍게 옷을 껴입은 나는 그 시기엔 어긋났을지 몰라도 쌀쌀한 저녁에 맞는 사람이었음을.

이사를 가던 어느 날 엄마와 옷정리를 한 적이 있다. 유행이 다 지난 옷을 버리려고 하자 엄마는 유행은 돌고돈다며 두었다가 나중에 입으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 버리려다가 말은 청자켓에 청바지, 일명 복고풍이 물씬 풍기는 청청차림으로 학교에 간 적이 있다. 때 지난 맵시에도 각광을 받는 옷차림이었다. 복고지향주의라고 지칭되는 문화로 인해 옛날에 유행했던 옷들과 오락기구들이 지금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즉, 현재에 과거를 가져와 또 한번 유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또 한번 느꼈다. 언젠가 유행이 돌고돌아 결국 내가 유행이 되는 때도 올 거라고, 지금은 철 지난 혹은 아직 이른 사고방식일지라도 이 사회가 나를 알아봐주는 때도 있을 거라고 여겼다.

사람들이 늘 말하듯 모두에겐 때가 있다. 내 과거들이 나를 현재로 밀고 내 현재가 미래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과정에서 한번쯤은 세상이 내 아귀에 맞을 때가 올 것이다. 내 고집이 담겨 있는 생각들이 외면받더라도 고장나 멈춰진 시계가 하루에 한번쯤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듯이 말이다. 그렇게 내가 나이가 들어 머리에 든 것이 많아질 때에도 복고가 유행이듯 내 젊은 시절의 때 지난 사고방식도 미래에서 누군가는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라고 여겼다. 한편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명성이 자자한 고서들처럼 어느 시대에도 걸맞는 생각을 하길 바라지만, 나는 지금 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김예은(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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