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좌파, 그리고 ‘쓸모 있는 바보들’

2019-04-0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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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바보들(useful idiots)’- 스탈린이 즐겨 사용한 말로 전해진다. 나름 이상에 들떠 열심히 소비에트체제를 찬양하고 선전한다.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토사구팽 될 처지인지도 모르고. 그런 서방의 좌파 지식인, 문화인들에 대해 경멸을 담아 냉소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일종의 냉전시대의 용어다. 그 말이 요즘 미국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석유매장량이 세계 최대로 아직도 마찬가지다. 그 때 사회주의국가가 됐다. 정확히 말해 사회 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회, 경제적 개혁을 약속했다. 대다수 베네수엘라 국민은 우고 차베스의 그 말을 믿었다. 미국의 좌파들도 믿었다. 좌파들의 차베스 찬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이클 무어는 차베스가 ‘오일 머니’로 베네수엘라의 극빈층 75%를 빈곤에서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사회주의 정권은 상상을 절할 정도의 ‘극도의 빈곤’을 창조했다. 그 사이 사회주의 정권은 권위주의형 체제에서 사회주의 독재체재, 더 나가 마피아체제로 전이됐다.

차베스의 후계자 마두로를 꼭짓점으로 군과 사법기관까지 돈과 마약, 부패로 연결지어진 공생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이 마피아체제에 저항하면 바로 감옥행이다. 베네수엘라의 정치범 숫자는 중국, 쿠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경제는 파탄이 난지 오래다. 연 수백만 %에 이르는 인플레가 계속되는 가운데 식량은 부족하고 모든 공공서비스는 중단됐다. 그 아수라의 현실을 탈출해 해외로 나간 난민만 300여만으로 라틴아메리카 최악의 인도적 재난이 될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쯤 됐으면 마이클 무어를 대표로 하는 미국 내 진보좌파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베네수엘라의 실패는 단지 석유가 하락에 그 원인이 있을 뿐이다. 결코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니다.

이것이 버니 샌더스의 입장이고 미국 신좌파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더 나가 서방세계 좌파들의 하나같은 입장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의 실패를 굳이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실패는 단지 경제매니지먼트의 실패일 뿐 사회주의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회주의, 더 정확히 말해 사회민주주의의 모델은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맞는 주장일까.


“스웨덴은 1970~80년대 한 때 사회민주주의와 흡사한 정책을 편 적이 있다. 그러나 잠시의 실험을 했을 뿐이다.” 스웨덴의 경제역사가 요한 노르베르크의 지적이다. 라르스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더 적극적으로 그런 주장을 반박한다. ‘노르딕 모델’은 성공적인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모델이지 사회주의 모델이 아니라는 거다.

국가가 정한 최저임금이란 것도 없다. 정부규제를 과감히 풀어 친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심지어 국제공항조차 사기업에 넘길 정도로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와는 동떨어진, 다시 말해 미국보다도 더 자본주의에 충실한 것이 노르딕 모델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들은 계속 ‘헬(hell) 베네수엘라의 현실’에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 마두로 체제를 옹호한다. 그러면서 반 마두로 시위자들을 극우파로 몰아세운다. 이 기괴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체제저항운동,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반제국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 냉전시대 좌파들의 시각이다. 그 구시대적 세계관에 여전히 갇혀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포린 폴리시지의 분석이다.

이런 멘탈리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반미 구호와 함께 이른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세력‘은 독재체제든, 전체주의세력이든 이념적 동지로 비쳐진다. 그러니 스스로 ’쓸데없는 바보들‘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

‘보다 정의로운 정치’를 모토로 내세운다. 그런 그들이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시리아의 아사드,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그리고 시진핑의 중국, 푸틴의 러시아와 연대를 꾀하는 극히 엽기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처절한 실패’는 외면한 채.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 사회주의가 보이고 있는 구역질나는 병 증세다.” 포린 폴리시의 지적이다. 그 결과 오늘날 좌파들은 자기중심의 단순 이분법적인 논리에 따라‘ 반제국주의 표방 독재자’의 압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미 제국주의 주구’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쓸모 있는 바보들’ - 멀리서 바라보이는 한국에서는 그 논쟁조차 사라진 것 같이 보인다. ‘찍히면 죽는다’ -.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대표에서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기업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딸들을 비롯해 조 회장 가족의 ‘갑질’로 국민적 지탄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연금)의 이름으로 민간기업의 대표이사도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뭐랄까. 정치권력, 사회권력, 문화권력, 그리고 사법권도 장악했다. 그리고 여론몰이를 통한 연금사회주의를 통해 ‘경제권력’에까지 손을 뻗쳤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재벌기업의 국유화도 가능해졌다고 할까.

좌향좌. 거침없는 사회주의 노선으로의 질주, 그 끝은 도대체 어디일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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