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당 ‘뉴 스타’의 명과 암

2019-03-21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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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선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아웃사이더다,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처럼. 지난해 테드 크루즈를 거의 이길 뻔하면서 전국의 민주당을 열광케 했던 그의 정치적 프로필은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 그는 민주당이 흔히 띄워 올리는 후보들처럼 알 수 없는 위대한 약속의 희망과 보다 나은 정치 같은 무정형의 이상주의를 제시한다. 그러나 가차 없는 사회주의자들의 필드에서, 비열해진 정치의 와중에서, 그는 그런 메시지를 들고 승리할 수 있을까”

“그의 대선 캠페인은 24시간만에 600여만 달러라는, 버니 샌더스보다 많은 엄청난 모금을 하며 재정적으로 당당하게 출발했다 … 그러나 그의 캠페인 첫 며칠 (10대 시절 실수, 악의 없는 코멘트, 자신이 백인남성이라는 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사과 순회방문’처럼 보였다. 좌파의 정체성 정치가 그를 텍사스 스테이크처럼 난도질하고 있다 … ”

대표적 보수신문 월스트릿 저널이 이례적으로 며칠 사이 두 번의 사설을 통해 분석한 ‘그’는 한 주 전에 민주당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한 베토 오루어크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텃밭 ‘텍사스 정복’ 가능성을 증명하며 민주당의 스타로 떠오른 베토는 그러나 출마 선언과 동시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자당 내 공격으로 방어에 급급하다.

바비 케네디를 연상시키는 핸섬한 46세 젊은 피, 그림 같은 가족, 컬럼비아 대학 시절 펑크록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했던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그의 친근하게 다가가는 소통 능력은 뛰어나다. 진보 유권자들에겐 ‘젊은 버니 샌더스’, 중도 유권자들에겐 ‘젊은 조 바이든’이라는 기대를 심어주며 어필하기도 한다.

그러나 폭넓은 표밭에서 열광을 이끌어내는 그에게 “실체는 없고 스타일만 있다”는 혹평이 가해지고, 엘파소 시의원과 연방하원의원 3선이 정치경력의 전부인 그에 대한 미디어의 각광에 여성후보들과는 대조적으로 ‘백인남성’이 누리는 특권이라고 분개하는 항의도 터져 나온다.

오루어크라는 성이나 로버트라는 정식이름보다는 ‘베토’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그는 10여명 민주후보들 중 경험도, 실적도 가장 적은 후보군에 속하지만 가장 관심을 끄는 화제의 후보인 것도 사실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유세장에 도착하든, 중남미 이민자들의 역경에 대해 열변을 토하든, 베토가 하는 모든 일은 열띤 반응을 불러냈다.

지난해 텍사스 연방상원 선거에서 신규 유권자들의 대거 투표참여를 성공시킨 그의 스타파워는 지난 주말 대선 첫 유세인 아이오와 캠페인에서도 여전했다. 곳곳마다 가득 찬 청중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에 공감하고 세대교체를 기대하며 그의 젊음과 에너지에 환호를 보냈다.

8,000만달러 온라인 소액 기부로 상원선거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던 모금 실력의 건재도 과시했다. 폴리티코는 “입이 떡 벌어지게 한 베토의 엄청난 모금실적이 비판자들을 잠재웠다”면서 613만 6,736달러라는 금액 자체뿐 아니라 특별한 인맥이나 대기업 지원이 아닌 풀뿌리 소액기부라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표로 이어지는 풀뿌리 캠페인이라는 뜻에서다.

상원선거에서 드러난 베토의 득표성향은 주목할 만하다. 투표자 중 44세 이하의 59%, 대학졸업자의 51%, 중도파의 65%, 독신여성의 62%, 히스패닉의 64%가 베토를 찍었다. 민주당의 2020년 백악관 탈환을 위해 중요한 유권자 그룹들이다.


그러나 주요정책에 대한 그의 입장은 여전히 모호하다. 그는 자본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 중도인가, 진보인가? 실용주의인가, 이상주의인가? 낙관주의인가, 현실주의인가? 그래서 조롱 담긴 논쟁이 계속된다. “난 꼬리표에 관심 없다”는 베토의 해명도 궁색하게 들린다.

한 마디로는 정의하기 불가능한 그의 이념과 정책입장을 LA타임스는 이렇게 정리했다 : 낙태권리, 마리화나 합법화, 이민문호 개방 등 사회이슈에선 리버럴, 경제이슈에선 중도파로 비교적 친기업 성향이다. 유니버설 헬스케어와 기후변화 대처는 강조하지만 ‘메디케어 포 올’과 ‘그린 뉴딜’에는 공식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한 가지, 그가 명료하게 밝힌 정책은 드리머 구제다. ‘시민권 취득의 길’을 제공한다는 민주당의 공식입장보다 더 나아가 ‘시민권 즉시 부여’를 제안했다.

그는 아직 구체적 정책 제시보다는 통합과 초당적 협력의 화해 메시지를 강조하고 “모든 곳에 가서, 모두의 소리를 듣고,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지금 이 나라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서 소통의 풀뿌리 캠페인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최종선택을 좌우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성이다. 그러나 변화에 목마른 유권자들에게 절실한 구체적 정책 제시 없는 감성적 스타파워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될 지는 미지수다. ‘가장 인기 없는’ 공화당 크루즈에 맞설 때 쏟아졌던 민주 표밭의 전폭적 지지가, 저마다 경력과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민주후보들과의 경쟁에서 여전할 리도 없다.

젊은 뉴페이스에 설레는 기대에만 의지해 가기엔 백악관까지 가는 길은, 아니, 내년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밀워키까지 가는 길도 너무 멀고 너무 험하다.

과거의 얼룩들이 튀어나오는 검증의 압박 속에서 이제 민주당의 뉴 스타 베토에게도 시련의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그는 과연 경선을 완주하며 대선후보 재목임을 증명해낼 수 있을까. 베토의 합류로 민주당 경선이 한층 드라마틱해지고 있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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