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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바다] 사분의 자리 유성우

2019-03-04 (월) 12:00:00 SF한문협 김소형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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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이름표를 붙인다. 산과 바다, 하늘과 땅 등 눈에 보이는 자연과 사물은 물론, 하늘에 떠있는 별들까지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고, 개개인의 경험치를 덧입고 세월 속에 덧칠해져 그 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남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사분의 자리(Quadrantids) 유성우가 있다. 한 해의 시작과 함께 맨 처음 맞이하는 유성우로 매년 1월 3일에서 5일 사이 나타나는 별똥별이다. 여러 유성우 중 규모 면에서 여름에 보이는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와 겨울의 쌍동이자리 유성우와 함께 3대 유성우에 속한다. 그러나 사분의 자리는 현재 그 별자리 이름은 사라지고 유성우의 이름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새해 전야 사람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이 요란한 터짐으로 하늘을 수놓고 지나간 것이라면, 사분의 자리 유성우는 새해 첫 유성우라는 이름으로 조용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불태워 빛을 발한 후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고 간다. 조용한 울림으로 하늘에 찰나의 빛을 뿌리면서.

그날도 늦은 시간 무심코 올려다 본 밤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눈 깜짝할 사이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목을 한껏 젖히고 별똥별이 또 어디선가 떨어질지 몰라 밤하늘을 주시하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 불빛과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바로 세우고 보니 푸른 눈에 백발인 이웃집 할아버지가 문 밖에 나와 시가를 태우고 있었다. 그분은 홀로 사신지 오래 되셨고 매일 외출도 잦지 않아 어쩌다 사람들을 만나면 쉼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하던 분이었다. 처음 이사오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이 넘게 집 앞에 서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도 있었다. 다른 일을 봐야 함에 난감하면서도 어쩌면 너무나 외로워서일거라 생각했다. 대부분 자신이 일하며 살아온 옛날 이야기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며 자녀들을 키운 이야기, 은퇴 후 보트를 사서 세계일주를 한 경험담 등, 그 분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던 날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주 반복되곤 했다. 그런가 하면 집으로 온 우편물을 누군가 가져갈 수 있다며 챙겨주거나, 고마움의 표시로 나누었던 음식에 대한 답례로 편지를 써 우체함에 넣어주고 시들지 않는 약을 넣은 꽃병에 꽃과 과자봉투를 현관 문에 걸어두고 가기도 했다. 주름진 얼굴에 세월의 깊이와 외로움을 안은 그분 안에는 아직 소년과 같은 낭만이 살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문을 부수는 듯한 커다란 소음에 잠이 깨었다. 창밖을 보니 구급차가 도착해 있고 할아버지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들것에 실려가고 있었다. 홀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고요함 속에서 살아 왔을까. 유성우가 내리던 그날은 내가 그분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날이 되었다.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반복되던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잠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분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소멸된 시간에 소멸하지 않는 가치를 담아 이름표를 붙이고, 하늘에서는 사라진 별자리지만 그 별자리 이름으로 내리는 유성우와 마찬가지로 후손에 의해 기억되고 살아질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던 유성우 같이 찰라를 지나며 만나는 인연들과의 해후, 그것 자체가 우리 삶의 모습이며 유성우는 이 땅에 살다간 개개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엔 개인의 의미를 넘어선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의 가치가 그들만의 이름표를 달고 정신적 유산으로 상속되어질 것이다.

미국에 이주해 온 수많은 이민자 중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이름표 ‘Korean American’. 그들의 이름 안에도 내재된 유산들이 존재한다. 하늘의 별똥별처럼 스스로를 불태우고 사라져 간 역사 속 사람들의 고통과 회환, 기쁨과 환희의 시간들과 그 이름으로 살아오며 남겼던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그 이름 안에 살아있다.

3월이 밝았다. 올해는 특히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여년 전인 1883년 외교사절단인 보빙사가 샌프란시스코 페리부두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수많은 한국인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와 같이 별자리는 사라졌지만 유성우는 내린다. 올해에도 다음해에도 지구가 별자리 궤도를 지날 때마다 잊혀지지 않는 정신적 유산으로 살아질 것이다.

<SF한문협 김소형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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