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고려 이야기

2019-01-1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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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극의 단골 무대는 조선이다. 지난 30여 년간 TV를 통해 소개된 사극 100여개 중 조선을 소재로 한 것이 87편에 달한다. 그 다음이 삼국시대로 17편, 고려는 고작 8편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관한 자료가 압도적으로 많은 데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쿠데타, 중종과 인조반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장희빈과 인현왕후 등 드라마 소재가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삼국시대는 자료는 적지만 세 나라가 치고받는 역학관계가 복잡하고 적은 자료가 작가들의 상상력을 촉발시켜 드라마를 그려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에 비해 고려는 사료도 풍부하지 않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극적인 요소도 적다.

그러나 극적 재미를 떠나 이룩한 업적만을 본다면 고려시대는 어느 때보다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시기다. 학자들은 고려 건국 초기 수도 개경의 가호 수는 10만, 인구는 50만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번성하던 도시 규모와 맞먹는다.


도자기와 제지술 등 국제적으로 인기 높았던 상품들을 사러 물려든 각국 상인들로 개경 앞 벽란도 항구는 분주했다. 서양사람들이 한국을 부르는 ‘Korea’라는 단어가 ‘고려’에서 왔음은 우연이 아니다.

고려인들이 남긴 업적은 많지만 그 중 가장 괄목할만한 것은 정치 군사적으로는 몽골제국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것이고, 사회 문화적으로는 금속활자 발명과 8만 대장경 간행이다. 13세기 몽골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만주와 중앙아시아의 다른 유목민족과 중국 본토인은 물론 아랍과 유럽 어떤 나라도 그 상대가 되지 못했다.

1242년 발슈타트에서 몽골군과 맞선 독일 폴란드 연합기사단은 궤멸됐다. 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몽골군대가 기수를 돌리지만 않았더라면 유럽 전체가 몽골의 지배 하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에서 몽골육군에 맞서 30년 간 7차례에 걸친 전쟁을 벌이며 나라를 지켜낸 것은 고려가 유일하다. 일본도 몽골군을 격퇴하기는 했으나 이는 몽골군이 수전에 약한데다 그들이 ‘가미가제’라 부르는 태풍의 힘이 컸다. 끈질긴 저항에 질린 몽골은 고려를 부마국으로 인정하고 전쟁을 끝냈다.

고려는 또 구텐베르크보다 80년 먼저 금속활자를 만들어냈다. 1234년 금속활자를 사용해 ‘상정 고금 예문’을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전하지 않으며 공민왕 때인 1377년 달잠과 석찬이 백운화상의 가르침을 가려 뽑은 ‘백운화상 초록 불조 직지심체 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인정받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이 서양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데 비해 한국은 이런 훌륭한 기술을 만들어내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에 못지않게 위대한 업적은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8만 대장경이다. 몽골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고자 1236년에 시작해 16년 만에 완성한 이 장경은 목판 8만1,000여 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완벽한 대장경으로 평가받고 있다. 30년에 걸친 전란의 와중에 이런 작품을 남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고려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이를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전시회 한번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국립 중앙박물관이 작년 말부터 올 3월 3일까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대고려: 그 찬란한 미술’이라는 특별전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고려청자를 비롯, 각종 불화와 나전칠기 등 고려인들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 450점이 출품됐는데 이는 해방 이후 고려미술에 관한 전시회로는 최대 규모다. 고려 건국 1000년이 되는 1918년은 나라가 없던 때라 제대로 조망할 여지가 없었고 이번이 사실상 고려에 대한 국가차원의 첫 생일잔치인 셈이다.

전시회장 한쪽에 걸려 있는 ‘큰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에 젖지 않는 연꽃같이/ 저 광야에 외로이 걷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숫타 니파타’ 경의 한 구절이 고려인들의 웅혼한 기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3월 이전 한국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국립박물관을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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