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0년 여정’의 끝에 선 제리 브라운

2018-12-27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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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주정연설에서 제리 브라운 주지사는 자신 있게 선언했다. “캘리포니아는 되살아났다” - 실패한 정부의 본보기, ‘통제 불능’이라고 사방에서 매도당해온 캘리포니아를, 취임 2년 만에 균형예산 실현으로 파산의 벼랑 끝에서 구출해 낸 것이다.

새해 1월7일 공식 퇴임하는 브라운 8년에 대한 성적표가 나오고 있다. 백악관이 등 돌린 기후변화 투쟁의 국제적 지도자로 올라서 획기적 온난화 대책을 입법화하고 트럼프시대에 위협 당하는 이민 보호를 위해 워싱턴과 강하게 맞선 통치에 대한 긍정평가는 이미 중간선거로도 증명되었다. 형량선고제와 보석제도를 고치고 초만원 교도소 문제를 해소시킨 형사제도 개혁엔 앞으로 시행 결과에 의한 찬반논쟁이 뒤따를 것이다.

상당수 난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금부족의 공무원 연금제도, 높은 빈곤율과 극심한 소득격차, 악화되는 주택난과 홈리스…그가 미래를 위한 과제로 야심차게 추진해온 두 가지 대형 프로젝트 - LA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탄환열차가 달릴 고속철도와 북가주에서 남가주로 물을 운반할 지하수로 건설은 그 엄청난 경비에 대한 논란과 반대로 아직 유보 중이다.


명암이 엇갈리는 속에서도 ‘재정난 해소’라는 획기적 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엔 이의가 없다. 세수를 부유층 소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세제개혁 없이는 다시 경기침체가 닥칠 경우 재정이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1년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로부터 270억 달러 적자재정을 물려받았던 브라운은 개빈 뉴섬 새 주지사에게 150억 달러 흑자 예산과 145억 달러의 비축금을 남겨주고 떠난다.

“운이 좋았다”는 브라운 자신의 말처럼 미국의 경기회복과 예산처리의 교착상태를 막아준 주민발의안 통과 등 정치환경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지만 자당인 민주당의 지출안을 거부하면서 견제역할을 강행한 그의 정치적 의지와 주민투표를 통해 유권자들의 증세 허가를 얻어낸 노련한 설득력이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못했을 것으로 대부분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13번의 선거전을 치르며 지속된 캘리포니아 정치와 브라운의 50년 관계는 더 할 수 없이 컬러풀했다. ‘모던 캘리포니아의 설계자’로 꼽히는 전설적인 주지사 팻 브라운의 아들로 일찍부터 주정에 익숙해진 그는 예일 법대 졸업 후 LA커뮤니티 칼리지 보드에 출마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주 총무처장관을 거쳐 1974년 36세 최연소 주지사에 당선된 그는 기성 정치에 저항하는 뉴 에이지를 대표하는 얼굴이고 정신이었다.

환경보호에서 노동법 개선에 이르기까지 리버럴의 기수이면서도 ‘절제의 시대’를 주창하는 재정적 보수였던 야심찬 젊은 주지사는 당시 민주당 의회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거부권행사를 12번이나 번복당하는 불화를 빚기도 했다. 주지사에 재선된 후 3번의 대선 도전과 한 차례 연방 상원의원 도전에서 모두 패한 그는 한동안 세계를 돌며 테레사 수녀의 의료봉사에 참여하고 선불교에 심취하는 등 철학적 탐구를 계속하다가 1998년 느닷없이 오클랜드 시장에 출마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범죄와 빈곤율 높은 오클랜드 시장 8년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68세이던 2006년 주 검찰총장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그가 72세에 주위의 은퇴 예상과는 달리 주지사 출마를 선언했을 때 캘리포니아와 전국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왜?” - 쏟아지는 질문에 파탄에 빠진 “사랑하는 나의 주를 되살리기 위해”라고 답했던 그는 오랜 세월 축적한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험난한 예산전쟁을 치러내며 결국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제 최연소, 최고령, 4선의 최장수 주지사를 역임하며 반세기를 달려온 긴 정치 여정의 끝에 서서 목장주로 은퇴할 채비를 하고 있다.

1975년 젊은 브라운 주지사가 첫 주정연설을 할 때 인구 2,150만명, 주 전체 개인소득 1,540억 달러였던 캘리포니아는 성장을 거듭하며 2018년 현재 인구는 4,000만명에 육박했고 전체 부는 15배로 늘어났다. 그동안 브라운 자신도 변했다. 성급하고 과격했던 정치초보에서, 트럼프시대라 더욱 돋보이는 ‘실용적이며 철학적인’ 성숙한 리더로 진화한 것이다.


“그의 가장 큰 공헌은 주정부에 대한 주민의 신뢰를 되살린 것”이라고 비당파적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PPIC) 마크 발다사르 회장은 지적한다. 2011년 1월 브라운 취임 이후부터 64차례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내린 결론으로 너무 왼쪽으로 기울지 않게 균형을 잡는 리더십이 무소속 중도 유권자들의 꾸준한 지지를 얻어냈다고 설명했다.

80세인 현재도 활기 넘치는 그는 지난주 새크라멘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최대 유산이 무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난 여전히 앞을 보고 있는데 벌써 회상하라는 것이냐”며 답변을 거부했으나 이런 조언을 남겼다. “정치란 어려운 비즈니스다. 충성은 중요하고, 막대한 기금을 모금해야 하지만…다 보상을 하려들면 감옥에 갈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보상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 ‘불가능한 균형잡기’의 연속이었던 주지사직을 “난 단 하루도 즐기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그는 늘 설전을 벌여온 ‘스파링 파트너’였던 기자들에게 말했다. 모두 주지사 취재를 즐겼으며 “지루한 순간이 한 번도 없었다”고 기자들도 화답했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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