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노로 공감하는 시대

2018-12-14 (금) 권정희 주필
작게 크게
남부 프랑스 시골의 자동차 정비공인 기슬랭 쿠타르(36)는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정부가 유류세를 올린다니 말도 안 된다. 다 같이 노란조끼를 입고 반대의사를 표시하자”는 내용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조끼사나이(vestman)’로 불리는 그의 동영상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조회수가 540만 번에 달했다. 평범한 한 근로자의,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동영상이 이렇게 인기를 끈 요인은 하나, 공감이다. 분노의 공감이다. “지금도 살기 힘든데 또 인상이라니!” 하는 분노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차 있었던 탓이다. 4주째 프랑스를 뒤흔들고 있는 ’노란조끼‘ 시위는 그렇게 태동되었다.

사소해 보이는 사건이 역사적 변혁으로 이어진 예는 꽤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몰고 온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도 시작은 사소해 보였다. 과일 노점상에 대한 단속이 불씨였다. 늘 있던 일, 그래서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26살의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단속반에게서 받은 모멸감을 참을 수 없었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이 안 돼 노점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마저 빼앗기자 부당한 공권력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8년 전인 2010년 12월 중순이었다.


10여일 후 그가 숨지자 시민들은 1월 4일 거리로 몰려나왔다. 독재정권에 숨 막히고, 높은 실업률과 고 물가에 배곯으며 꾹꾹 눌러두었던 분노가 폭발했다. 수많은 ‘부아지지’들의 목숨 건 시위 앞에서 23년 독재 권력은 무너졌다. 시민봉기의 열기는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시리아 등지로 퍼지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 각국의 역사에 ‘봄’을 몰고 왔다.

모든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는 그것이 사소한 측과 사소하지 않은 측이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정부는 기후변화 대책으로 유류세 인상을 결정했다. 기름 값을 올려 차량운행을 억제함으로써 대기오염을 줄이겠다는 취지이다. 지구를 살리는 거창한 일에 기름값 조금씩 더 부담하는 일은 사소해 보였을 수 있다.

문제는 ‘한 나라, 딴 국민’이다. 파리 등 대도시의 엘리트 국민과 도시 변두리와 시골의 중하층 국민 사이의 간극이 너무도 커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로 날개를 단 부유층과 점점 아래로 추락하는 빈곤층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 깊고 깊은 양극화 현상이다.

기름값 몇 푼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노란조끼’들은 거리로 몰려나오고, 호화로운 삶의 상징인 파리는 방화와 파괴, 약탈로 ‘전쟁터’가 되었다. 친기업 정책을 내세우며 부유세 폐지, 법인세 인하 등을 단행한 마크롱은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낙인찍히며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

정면 돌파를 선언했던 마크롱은 예상외로 거센 시민들의 분노 앞에서 자세를 낮추었다. 서민들의 분노를 이해한다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유류세 인상 철회는 물론 최저임금 인상 등 복지정책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한번 폭발한 ‘노란조끼’들은 물러설 기미가 없다. 한국 코미디를 차용하자면 “부자들만 잘 사는 더러운 세상”을 바꾸어 놓고야 말겠다는 태세이다.

프랑스 사태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와 규제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미국의 정책이자 한국의 정책이다. 같은 성과, 같은 고통이 내재해 있다.

한국은 올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반면 청년들은 여전히 살인적 취업난에 시달리고, 영세 자영업자들은 문 닫기 일보직전이며, 종로의 고시원 쪽방에 살던 늙은 일용직 노동자들은 화재로 맥없이 죽어갔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나라 모습이 아니다.


부가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극소수에게 몰리는 결과, 사람보다 자본이 중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귀결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그 폐단을 지적한 운동이 전개되었다. 2011년의 ‘점령하라, 월스트릿’ 운동이다.

‘점령하라’는 너무 많이 가진 1%와 너무 못 가진 99%를 대비하며 부의 편중현상의 폐해를 지적했다. 그리고 7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제프 베조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 미국의 최고 부자 3명이 가진 부는 전체 인구 중 소득하위 50% 즉, 1억6,000만 명의 부를 넘어선다. 부자 한사람의 몫을 서민들은 5,300여만 명이 나눠 갖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독식이다.

이들 최고 부자만이 아니다. 지난해 포브스 400의 꼴찌부자의 자산은 20억 달러였다. 포브스 400이 시작된 1982년 당시보다 10배가 불어난 숫자이다. 한편 미국의 가구당 중간소득은 1983년 8만3,000달러(현재 화폐가치)였던 것이 지금은 8만 달러로 떨어졌다. 부자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서민들의 주머니는 점점 더 쪼그라든다는 말이다.

삶의 조건이 천양지차이면 시각이 같을 수 없다. 부자들의 넘쳐나는 돈은 정치기금으로 들어가고, 정치는 부자들의 시각을 반영하는 사회에서 서민들의 불안과 불신은 깊다. 그리고 생계와 직결되는 사안이 사소하게 취급당할 때 그들은 분노한다. 불씨 하나 떨어지면 화르르 불탈 분노의 공감대가 도처에 형성되어 있다. 지금은 프랑스, 다음은 어디일지 알 수 없다.

<권정희 주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