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웃이 사라지는 사회

2018-11-30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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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가 이어지던 8월의 마지막 주, 뉴욕 맨해턴에서 한 사람이 발견되었다. 자동차 운전석에 꼼짝 않고 앉아있던 사람이었다. 차가 세워져 있던 이스트 12가 거리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누구도 그가 죽어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밤 이웃주민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다가 차안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는데, 이틀 후에도 그가 거기 그대로 있는 걸 보고는 911에 신고를 했다. 남자는 61세의 조프리 웨글라즈,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그의 삶을 추적해 심층 보도했다. 그는 젊어서는 연극배우로, 이후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성공해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델에서 개발담당 선임디렉터로 일하던 2011년 잦은 출장이 힘에 부쳐 퇴직한 후 삶이 거짓말처럼 곤두박질쳤다. 가정은 깨어졌고, 이력서를 근 500군데나 냈지만 취업에 실패했고, 모아둔 돈은 바닥이 났다.


만약을 생각해 온라인 암시장에서 안락사 용 독약을 사두었던 그는 8월 24일 맨해탄으로 차를 몰았다. 오후 1시 18분 맨해턴으로 들어오는 그의 차량 번호판이 교통 카메라에 찍혀있다. 그리고는 4시간 쯤 후 플로리다에 사는 누나에게 “생각했던 대로 이건 맛이 너무 나빠”라고 텍스트를 보낸 것이 그가 살아서 한 마지막 행동이었다. 섬뜩한 느낌에 누나와 형이 다급하게 경찰에 신고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평범한 이 남성의 삶의 궤적을 뉴욕타임스가 통판으로 다룬 것은 이 사건이 주는 충격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 왕래 빈번한 거리에서 사람이 죽어있는데도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도 몰랐던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보여준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대상들을 제외하고는 타자에 철저하게 무관심한 사회, 그래서 이웃이 사라져가는 사회의 단면이다.

그가 자살 장소로 번잡한 거리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죽은 후 빨리 발견되기를 바랐을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이웃 없는 사회에서 길가의 낯선 차량이 관심을 끌기는 어렵다.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서로 알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이웃이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 돕고 그래서 유대가 강한 반면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던 시절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있었다. 그런 사회적 유대의 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해 관심을 모은 것이 1990년대 중반 로버트 퍼트넘 박사의 논문 ‘나홀로 볼링’ 이었다.

TV, 인터넷 등 테크놀로지의 등장으로 전에는 누군가와 어울려야 할 수 있던 여가활동을 ‘나홀로’ 할 수 있게 되고, 부부 맞벌이와 장거리 출퇴근 등 생활패턴의 변화로 사회적 연결망 혹은 사회적 자본이 쇠퇴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리고는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웃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웃에 살지만 ‘이웃’은 아닌 경험을 우리 모두 하고 있다. 이웃에 사는 사람 같기는 한데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사회 전반 여론조사(GSS) 통계에 의하면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이웃과 주 1회 이상 어울리는 사람은 30%에 달했다. 지금은 2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이웃과 전혀 왕래가 없다는 사람은 40년 전 20%였던 것이 지금은 35%에 달한다.

2014년 ‘사라지는 이웃’이라는 책을 펴낸 마크 던클만 박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를 3개의 동심원으로 설명했다. ‘나’를 중심으로 제일 안쪽 원은 가족 친구 등 가장 친밀한 사람들, 가운데 원은 친하지는 않지만 낯익은 이웃들, 바깥 쪽 원은 공통의 관심이나 직업과 관련해 알고 지내는 지인들로 구성된다.


디지털 시대가 되어 언제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바깥쪽 원의 지인들과의 관계는 강화된 반면 상대적으로 교분의 필요가 약해진 존재가 이웃이다. 굳이 알고 지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지구 저편의 누군가와는 매일 대화를 나누면서 길 건너 사는 이웃과는 인사도 나누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웃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진 사회는 대가를 치른다. 불신과 고독감이다. 예정에 없이 누군가 문을 두드리거나 낯선 사람이 문 앞에 서있으면 일단 불안해지는, 이상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미국인들 중 절반은 ‘남들을 믿는다’고 했지만 지금은 10명 중 3명꼴로 줄었다.

날로 늘어나는 고독사 역시 이웃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바로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바로 길가에서 사람이 죽어있어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회가 정상일 수는 없다. 사회적 연결망이 무관심으로 숭숭 구멍이 뚫렸다.

이웃은 이웃으로서의 기능이 있다. 멀리 사는 가족이나 친구가 줄 수 없는 도움을 이웃은 주고받을 수 있다. 특히 연말은 외로운 사람들의 외로움이 깊어지는 시기, 좋은 이웃이 필요하다.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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