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FAANG의 추락

2018-11-2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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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올 초까지 미국 주식시장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당선된 2016년 가을부터 올 초까지 미 상장 주식가치는 6조6,000억 달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바마 집권 8년간 오른 주가 총액의 절반에 해당한다. 트럼프는 이런 주가 상승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러던 그가 요즘에는 별로 주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지난달부터 거의 모든 주식이 하락하며 올 상승분을 모두 까먹었기 때문이다. 오른 것이 자기 때문이었으면 내린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텐 데 트럼프가 그럴 가능성은 제로 이하로 보면 된다.

지난 수년간 미 주가 상승을 주도한 것은 소위 ‘FAANG’이라 부르는 대형 하이텍 주들이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의 앞자리를 따 만든 이들 주식은 지난 6년간 900%가 넘게 올랐다. 미국 500대 기업을 대표하는 S&P 500지수 상승률 100%의 9배에 달하는 수익률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친 이들 주가 폭등은 주식에 투자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돈을 날린 개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이들은 다시 FAANG 열차의 막차를 타고 말았다.

이들 주식은 올 들어 10월 초까지만 해도 넷플릭스 100%, 아마존 70%, 애플 40% 오르는 등 기대에 부응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10월 들어 폭락세로 돌변하면서 올 최고치에서 넷플릭스와 페이스북은 40%, 아마존 30%, 애플 24%의 하락을 기록했으며 이와 함께 1조 달러가 증발했다.

이런 주가 폭락에 못지않게 우려되는 것은 이들 주식에 대한 미 증시의 과도한 의존이다. 애플과 아마존,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 총액은 미 주식시장 전체의 14%에 달한다.

이들 다섯 개 주식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거대한 미국 증시의 방향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소수 기업이 미 증시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들 몇 개 기업이 잘못되면 미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커질 때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음을 미국 기업사는 보여준다. 1990년 이후 한 기업이 주식시장 전체의 4%를 넘은 것은 5개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GE, 시스코 시스템과 엑손 모빌, 그리고 애플이 그들이다. 그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60%, GE는 90%, 시스코는 80%, 엑손은 70%의 주가 하락을 기록했다. 이들 중 떨어졌다 하락분을 상당 부분 만회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뿐이다.

과연 애플이 이들 주식의 운명을 피해갈 수 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이들 주식이 이렇게까지 높은 가치를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투자가들의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인데 이를 오랫동안 충족시키기는 극히 어렵다. 시장 상황은 계속 바뀌고 경쟁자가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이를 모두 물리치고 언제까지나 선두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주식이 과대평가돼 있는지, 저평가 돼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척도 중에 ‘버핏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상장된 주가 총액과 GDP 총액과의 비율로 이 비율이 90% 정도면 적정선이고 그 이상이면 과대평가, 그 이하면 저평가 돼 있는 것으로 본다. 전설적인 투자가 워렌 버핏이 이 수치야말로 “주식 가치평가의 가장 뛰어난 척도”라고 불러 ‘버핏의 법칙’이란 이름이 붙었다.

현재 미 주식시장 총액은 27조 달러로 20조 달러로 추산되는 미 GDP의 130%가 넘는다. 미 주식이 이처럼 과대평가된 것은 2000년 하이텍 버블과 2007년 부동산 버블 때뿐이다. 2009년 바닥을 친 후 미 증시는 9년 동안 상승세를 이어왔다. 미 역사상 가장 긴 ‘황소장’이다. 수명이 다할 때가 가까웠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거기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는 계속 금리를 인상하려 하고 있고 무역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트럼프는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라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한마디로 호재라고는 찾아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도 내년도 증시가 계속 오르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매우 낙관적인 사람이다. 2000년과 2007년 낙관론자들의 운명을 기억하자.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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