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블랙 페이스

2018-11-10 (토)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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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페이스
NBC-TV의 모닝쇼 ‘투데이’의 진행자 중 한 사람인 메긴 켈리가 최근 할로윈 얘기를 하면서 “내가 학교에 다니던 과거엔 백인들이 얼굴을 검은 칠로 분장을 해도 괜찮았다”는 망언을 해 쇼에서 퇴출당했다.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그들의 DNA에 들어있다시피 한데 1983년에는 ABC-TV의 ‘먼데이 나잇 풋볼’을 오랫동안 중계해온 베테런 방송인 하워드 코셀이 풋볼중계를 하면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흑인선수를 “작은 원숭이”라고 불러 그 여파로 프로그램에서 자진 사퇴했다.

백인들이 영화나 쇼에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근 1세기 동안이나 유행한 버라이어티쇼인 ‘민스트렐 쇼’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한 백인들이 무대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고 코미디를 연출하면서 흑인들을 어릿광대요 게으른 멍청이들로 묘사, 인기를 끌었었다.

‘민스트렐 쇼’의 흑인에 대한 이런 묘사는 흑인들과 직접 접촉이 없는 백인들로 하여금 흑인을 열등한 사람으로 인식케 하는데 일조를 했다 켈리가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런 몰지각한 발언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켈리는 ‘트럼프 방송’인 폭스뉴스 출신으로 과거에도 예수와 산타 클로스를 백인이라고 우겨 물의를 빚었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은 지금 진보와 보수가 격렬한 대립양상을 띠고 있는 가운데 증오와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켈리의 발언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백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노릇을 한 것은 할리웃에서도 무성영화 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 대표적 영화가 D. W. 그리피스가 감독한 대하 서사극 ‘국가의 탄생’이다.
남북전쟁과 전쟁 직후의 드라마로 백인 배우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백인 여자들을 겁탈하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바람에 이에 대항해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가 조직됐다는 내용이다. 흑인들은 무법자들로 KKK는 백마의 기수들로 묘사된 이 영화를 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번개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작품이다.

얼마 전 ‘블랙클랜스맨’을 감독한 스파이크 리를 만났을 때도 이 영화가 거론됐는데 그는 “‘국가의 탄생’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묘사된 흑인들을 보면 욕지기가 난다”고 열을 올렸다. 그가 오스카상을 받은 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맹렬히 비판 한 것은 영화에 나오는 스칼렛의 충실한 하녀 매미와 또 다른 하녀 프리시를 비롯한 흑인들이 다 노예근성에 사로 잡혔거나 맹한 인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리는 트럼프를 “디스 가이”라고 부르면서 “탄핵 받아야 마땅할 그가 절대로 재선되지 못하게 유권자 등록을 하라면서 인종차별이 없어지기를 희망하고 싶지만 결코 낙관할 수가 없다”고 비관했다.

백인 배우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낸 또 다른 유명한 영화가 할리웃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사진)다. 여기서 가수로 나온 알 졸슨은 입술은 새하얗게 그리고 얼굴은 새카맣게 칠하고 무대와 나와 ‘마이 매미’를 노래한다.

특히 백인들의 흑인 노릇은 뮤지컬에서 많은데 뛰어난 뮤지컬 배우들인 프레드 애스테어, 주디 갈랜드, 빙 크로스비, 미키 루니 및 셜리 템플 등이 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춤추고 노래 불렀다. 불과 6년 전인 2012년 오스카 시상식 때는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탈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유명 흑인가수이자 배우인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흉내를 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도 했다.

할리웃은 예나 지금이나 백인들의 세상이다. 과거 할리웃은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동양인 역을 다 백인 배우들에게 줬다. 특히 웨스턴에 자주 나오는 아메리칸 인디언들로 백인배우들을 썼다.


록 허드슨, 버트 랭카스터, 찰스 브론슨, 잭 팰랜스, 척 코너스, 제프 챈들러, 앤소니 퀸 및 로버트 테일러를 비롯해 심지어 오드리 헵번도 아메리칸 인디언 노릇을 했다.

그 중에서도 실로 가관인 것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나온 걸작 웨스턴 ‘윈체스터 ‘73’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으로 나온 록 허드슨이다. 그는 영양상태가 좋은 살이 토실토실 찐 상반신을 벗어 제친 채 서툰 영어를 구사해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연실색 했던 기억이 난다.

과거 할리웃의 백인배우들은 동양인역도 전매특허 냈듯이 자기들이 했다. 그 중에서도 최고 걸작(?)이 ‘정복자’에서 존 웨인이 옆으로 찢어진 눈에 가느다란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온 것. 이 밖에도 말론 브랜도, 알렉 기네스, 캐서린 헵번, 미키 루니, 폴 뮤니, 루이즈 레이너 및 피터 로레 등도 모두 동양인들로 인종 변경을 한 배우들이다. 미국에 사는 동양인으로서 나도 인종차별을 당해 봤는데 나도 이 문제에 관해선 스파이크 리처럼 비관적이다. .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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