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버트 에반스

2019-11-09 (토)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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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에반스
우리는 보통 어느 한 영화를 생각하면 그 것을 연출한 감독이름은 알아도 막상 제작자의 이름은 모르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제치고 제작자가 감독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진 영화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이 영화는 제작자인 데이빗 O. 셀즈닉의 영화로 작품의 총지휘자인 그의 명성에 짓눌려 영화를 감독한 빅터 플레밍의 이름은 까맣게들 잊고 있다.

할리웃에서 셀즈닉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명성을 날렸던 제작자가 패라마운트의 영화제작사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로버트 에반스다. 에반스는 ‘러브 스토리’와 ‘대부’와 ‘차이나타운’같은 영화를 만들어 파산지경에 이르렀던 패라마운트를 소생시킨 뛰어난 제작자였다. 에반스가 10월 26일 89세로 LA에서 사망했다.

히트작을 내다볼 줄 아는 탁월한 선견지명을 지녔던 에반스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패라마운트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다. 뉴욕 태생인 그는 성공 못한 배우 출신으로 1957년 헤밍웨이 소설이 원작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에이바 가드너가 눈독을 들이는 스페인의 투우사 페드로 단역으로 나온 것이 가장 신통한 것이다.


이런 그가 36세 때인 1966년 패라마운트의 사장이 되면서 할리웃에 신풍을 몰고 왔다. 에반스는 취임 이전에 단 한 편의 영화도 제작한 경력이 없어 할리웃으로부터 조롱을 받았지만 그는 이에 히트작 양산으로 대답했다. 에반스가 제작하거나 배급한 히트 영화들로는 ‘로즈메리의 아기’ ‘오드 커플’ ‘굿바이, 콜럼버스’ ‘로미오와 줄리엣’ ‘트루 그릿’ 그리고 ‘해롤드와 모드’ ‘플레이 어겐, 샘’ 및 ‘페이퍼 문’ 등.

이들 영화의 히트로 패라마운트는 그때까지 메이저 스튜디오들 중 흥행 꼴찌의 회사에서 1971년에는 탑 위치에 올라섰다. 이런 탑 고지 정복에 큰 기여를 한 영화가 눈물 짜는 로맨틱 신파극 ‘러브 스토리’다. 알리 맥그로와 라이언 오닐이 주연한 영화는 1971년 최고의 흥행작으로 맥그로는 당시 에반스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사진)

다정하던 맥그로와 에반스의 결혼생활을 파탄시킨 남자가 스티브 맥퀸이다. 맥그로는 ‘러브 스토리’ 다음 편인 부부 은행 강도 영화 ‘겟어웨이’에서 맥퀸과 공연하면서 악동의 매력을 지닌 그에게 빠져들어 에반스를 떠났다. 당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대부’를 제작 중이던 에반스는 뒤 늦게 부랴부랴 ‘겟어웨이’ 촬영현장까지 날아갔으나 별무소득이었다.

에반스는 할리웃의 최고 멋쟁이 중 하나였는데도 맥그로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에반스는 태운 가무잡잡한 피부에 큰 테안경과 터틀넥을 상용한 멋쟁이로 영화 못지않게 화려하고 과도한 사생활로 이름을 떨쳤었다. 에반스의 이런 외양은 더스틴 호프만이 정치 풍자영화 ‘개를 흔드는 꼬리’에서 흉내를 냈다.

에반스는 생전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상냥 다정하고 매력적인 난봉꾼이자 약물 중독자요 도박꾼이었고 허영이 삼했던 자기 파괴적 인물로 사업가라기보다 낭만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었다.

그는 또 영화사 사장이면서 독자적으로 자기 이름하에 따로 영화를 만들어 할리웃에 독립영화의 기틀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 첫 영화가 할리웃이 만든 최고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LA를 무대로 한 필름 느와르 ‘차이나타운’이다.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후에 에반스의 친구가 된 잭 니콜슨과 페이 더나웨이가 공연한 영화는 로버트 타운이 오스카 각본상을 탄 걸작이다.

에반스는 ‘대부’를 만들면서 코폴라와 끊임없이 창조적 다툼을 벌였다. 에반스가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바람에 코폴라는 ‘대부’ 속편을 만들 때 에반스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고서야 연출에 응했다. ‘대부’ 속편은 오스카 작품상을 탔다.

그러나 할리웃의 총아로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에반스의 영화인과 개인으로서의 생애는 1980년대에 들면서 내리막길로 치닫게 된다. 코케인을 상용하다가 뉴욕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약물방지 영화를 만드는 조건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보다 더 악명 높은 사건이 1983년에 일어난 소위 ‘카튼 클럽’살인사건. 에반스가 이 영화의 제작비 조달을 할 때 돈을 대겠다고 나선 마약딜러들과 관계가 있던 로이 래딘의 총탄을 맞은 시신이 발견되자 에반스가 래딘의 살인을 사주 했다는 풍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이 뉴스는 전미국의 뜨거운 화제가 됐었다. 에반스는 후에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뒤로 에반스는 할리웃에서 문둥병자 취급(에반스의 말)을 받으면서 외면을 당했다. ‘카튼 클럽’은 코폴라가 감독해 완성됐지만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에반스는 1991년 패라마운트와 계약을 맺고 독립제작자로 컴백을 시도,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과거의 것들에 비해 훌륭하지도 또 흥행도 신통치 못했다. 모두 7번 결혼한 에반스의 생애는 자서전 ‘키드 스테이즈 인 더 픽처’로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고 책은 동명의 기록 영화로 만들어졌다. 에반스 개인의 생애와 할리웃의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알차고 재미있는 영화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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