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인들이 보는 시인 윤동주

2018-09-23 (일) 10:57:13 변만식 윤동주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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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윤동주의 이름이 일본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일본의 국영방송 NHK가 1995년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그리고 별의 시”를 특집으로 방영하고 나서 부터다. 당시에 NHK의 디렉터로 있던 다고 기찌로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언어학자며 시인인 이부끼 교가 번역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기찌로는 이 방송을 발표한 후 예정 되었던 영국 유학 10년의 공백기를 보낸 후 윤동주 연구를 계속 하기로 결심하고 그가 걸어온 행적을 면밀히 더듬어 나갔다.

그의 작품 서시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에 주제를 놓고 숙명적인 입장에 놓인 윤동주의 생사관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영국작가들의 작품에서 유사 표현을 인용 대조해 가면서 주제의 핵심을 더듬어 나갔다. 윤동주 연구는 철두철미하였고 깊고 광범위하여 서시에서 골라낸 예문만도 15편이 넘었다.

이런 과정에서 기찌로는 윤동주가 반한(半韓-반은 한국사람)이라 자칭하는 일본인 우에무라 마사오와 교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우에무라는 본래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사람이었으나 히로시마에 본부를 둔 ‘반한회’라는 문학회를 대표하는 만주국(일본의 괴뢰정부)의 공무원이었다.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문필가요 반면 윤동주는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어서 두 사람의 교제는 문학을 좋아하는 문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윤동주가 옥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장문의 조의문을 가족에게 전해 주었다.


한편 고도 기찌로는 윤동주의 일본 유학생활의 발자취를 추적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의 모교 도시샤와 릭교대학 동창회에도 문의 하였으나 윤동주의 행적은 묘연하였다. 실망에 빠진 그에게 뜻밖에도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다니던 기다시마 마리꼬와 모리시다 하루라는 여학생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 쾌재를 부른 후 기다시마 마리꼬를 찾아 갔다. 그녀의 말인즉 윤동주라는 학생은 몰라도 히라누마 도쥬라는 조선에서 온 키가 크고 점잖고 시를 잘 쓰는 유학생은 잘 알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기찌로는 윤동주가 일본 입국허가를 받기위해 할 수 없이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꾼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마리꼬와 윤동주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었다. 어느 날 윤동주와 그녀가 불어 강의를 청강하고 있을 때 윤동주가 보들레르의 시를 암송할 차례가 되었다. 윤동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라며 얼굴을 붉혔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윤동주가 일본을 떠나기 전 어느 날 영문과 동창들은 이즈강가에 소풍을 갔었다 한다. 그 자리에서 윤동주는 금지되었던 한국민요 아리랑을 불렀고, 고별인사로 “자네들에게는 지켜야 할 조국이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네”라는 뼈있는 말을 하여 영문과 과장인 우에노 교수의 눈살을 찌뿌리게 하였다는 일화도 남기면서 마리꼬는 그녀의 앨범에서 윤동주와 동급생들이 찍은 그들의 마지막 사진을 내놓았다.

우수 어린 그녀의 눈길을 이찌로는 애써 외면해야 했다고 한다. 일본인에게 윤동주는 한낱 자기나라 통치하에 있던 조선, 그것도 본토가 아닌 만주에서 일본에 유학 온 시 쓰기를 좋아했던 한 이국의 청년에 불과했다. 전쟁이 끝난 어느 시기에 이찌로를 비롯한 일본의 지성인들은 윤동주가 남긴 시를 통해 전해주는 거룩한 인간애, 절대자가 창조한 대자연의 찬미, 창조주가 빚어놓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윤동주를 기려 그를 사랑하는 모임을 갖게 되었고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생명의 시인 윤동주’가 다고 기찌로의 손에 의해 발간되었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윤동주의 기일인 2월26일이 오면 원근 각지에서 윤동주를 사랑하는 모임을 갖고 윤동주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한다 하니 놀라운 열정이 아닐 수 없다.

<변만식 윤동주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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