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산도 강도 한없이 푸른 정겨움

2018-07-20 (금) 금산=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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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 ‘끝마을’ 금산 방우리ㆍ적벽강ㆍ마달피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산도 강도 한없이 푸른 정겨움

제원면 용화리 마달피 구간 금강의 풍경. 작은 풀벌레 소리가 계곡에 울릴 정도로 고요하다. /금산=최흥수기자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산도 강도 한없이 푸른 정겨움

길이 끝나는 곳, 금강이 휘감아 도는 왼편 산자락 아래가 원방우리 마을이다. /금산=최흥수기자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산도 강도 한없이 푸른 정겨움

바위절벽이 잔잔한 적벽강 수면에 비친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산도 강도 한없이 푸른 정겨움

눈으로 먼저 맛보는 금강 상류 대표 음식 도리뱅뱅이.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길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 터널과 교량으로 길 내기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시대지만, 충남 금산의 금강엔 도로가 끝나는 강변 오지가 여러 곳이다. 인근 마을을 가려 해도 한참을 돌아야 해 주민들은 그만큼 불편하지만, 덕분에 여름마다 반딧불이 불빛이 반짝이는 청정 환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녹음이 우거진 7월, 산도 강도 한없이 푸른 금산 금강의 ‘끝 마을’ 풍경을 전한다.

설움도 아름다움도 방울방울, 무주인 듯 금산 방우리마을

금산 남쪽 부리면 방우리는 행정구역상 금산 땅인데도 금산이라 하기 애매하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전북에서 충남으로 흘러드는 금강 줄기는 부리면에서 열네 번이나 뱀처럼 구불구불 돌아나간다. 그 첫 굽이에 위치한 방우리에서 외지와 연결되는 유일한 도로는 금산이 아니라 무주로 나 있다.


무주읍내에서 북쪽으로 다리를 하나 건너 내도리 앞섬마을에 이르면 길가에 ‘방우리 가는 길’이라고 쓴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규격을 갖춘 정식 표지판도 아니어서 일부러 찾아가려는 사람이 아니면 눈에 띄지도 않는다. 강변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앞섬마을을 벗어나면 시원하던 물소리가 잠잠해지고, 매끄러운 수면에 하늘과 산이 거울처럼 비친 환상적인 풍경과 마주한다. 시리도록 눈부신 호수가 주변의 모든 소음을 빨아들인다. 갑자기 이명현상이 찾아온 듯 사방이 고요하다. ‘방우리 수력발전소’라는 안내판이 세워진 이곳부터 금산 땅이다. 방우리 수력발전소는 1987년 건설된 소규모 발전소다. 물막이 시설은 댐과는 거리가 멀고, 말썽 많은 4대강 보에 견주어도 초라한 규모다. 물 흐름을 조금 늦추는 수준이다.

발전소 옆 촛대바위를 지나면 길은 두 개로 갈라진다. 왼편은 ‘원방우리(혹은 큰방우리)’, 오른쪽은 ‘작은방우리’로 가는 길이다. 물론 이정표는 없다. 원방우리는 오래 전부터 주민들이 거주했던 곳이고, 작은방우리는 6.25 전쟁 때 무주읍내 주민들이 공습을 피해 숨어 든 피란처였다.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한때 50가구가 넘게 거주하던 원방우리에 지금은 12가구만 남았다.

무주읍내에서 불과 6km 떨어진 곳인데도 마을은 적막강산이다. 강과 나란히 휘어 도는 산줄기가 아늑하게 마을을 감싸고, 어느 집 툇마루에 앉아도 느릿하게 흐르는 강이 보인다. 이 정도면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을 법도 한데, 방우리엔 그 흔한 펜션이나 민박집 하나 없다. 능소화 늘어진 낮은 담장 주변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마을과 강 사이 좁은 농지에는 고추며 참깨 오미자 등이 한여름 땡볕을 영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은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다.

방우리 주민들은 경계인의 설움에 익숙해진 듯하다. 생활권은 무주지만, 금산군에서 순순히 놓아줄리 만무하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웃돈을 내고 택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최근에 금산군에서 시내버스 요금(3명 이상)으로 무주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쿠폰을 지급해 그나마 부담을 덜었다. 그러나 자가용 없이 군청이 있는 금산에 가려면 여전히 무주로 나가서 버스를 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금산의 제1경 적벽강, 절대 고요 마달피

작은방우리에서 물길로 약 3km(찻길로는 32km, 약 1시간이 걸린다) 내려가면 금산의 제1경 ‘적벽강’이다. 부여에서 부소산 뒤편 금강을 ‘백마강’이라 부르는 것처럼, 부리면 수통리의 붉은 바위 벽 아래를 흐르는 금강을 이르는 별칭이다. 30여m 절벽 아래를 느리게 흐르는 적벽강 주변에는 자갈밭이 넉넉하게 펼쳐져 있어 여름에 물놀이와 뱃놀이를 즐기려는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

‘부리면의 최고봉 성주산(624m)이 남쪽으로 줄기를 뻗어 내리다가 금강으로 자락을 급히 내려 일군 기암 절벽’이라고 거창하게 소개된 적벽은 앞에 서면 과장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딱히 산세가 웅장한 것도 아니고, 바위 생김새가 유별나게 빼어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풍광으로만 치면 강원 영월의 동강 주변 이름없는 절벽도 이보다 빼어난 곳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이곳 금강에는 주변을 압도하는 험산 산세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 어디를 봐도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하다. 산도 강도 바라볼수록 정겹다. 똑 부러지지도 모나지도 않은 충청도의 성정과 닮았다.


제원면 용화리 마달피 구간 금강의 풍경. 작은 풀벌레 소리가 계곡에 울릴 정도로 고요하다.

적벽강에서 조금 더 하류인 제원면 용화리 금강에는 ‘절대 고요’만이 흐른다. 짙은 녹음이 내려앉은 강이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켰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따금씩 들리는 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쩌렁쩌렁하다. 차를 아무리 살살 몰아도 엔진 소리가 정적을 깨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경고문 하나 없지만, 느리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당신이 편안한 곳, 이곳에 왔습니다.’ 용화마을 안내판에 쓴 글귀만큼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적벽강과 용화마을 등 금강 주변 식당들은 대부분 금산의 대표 음식인 어죽과 도리뱅뱅이를 취급한다. 어죽은 생선가시 때문에 민물매운탕을 꺼리는 이들이게 제격이다. 삶아서 채로 걸러낸 민물생선 국물에 쌀과 수제비, 국수까지 곁들여 한 끼 식사로 든든하다.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장식해서 내오는 도리뱅뱅이는 눈이 먼저 즐거운 음식이다. 구운 듯 튀긴 듯, 부드러우면서도 바삭바삭한 식감도 그만이다. 원래는 금강에서 잡은 모래무지로 요리했지만, 어획량 감소로 요즘은 대부분 빙어를 쓴다.

<금산=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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