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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아 산을 닮다…1500년 전 대가야 시간 산책

2024-10-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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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만큼 보이는 풍경 - 고령 지산동고분군과 이운순례길

경북 고령은 고대국가 대가야의 중심이다. 박물관, 전시관, 수목원은 물론 식당, 카페, 생활편의시설까지 ‘대가야’를 앞에 내세운다. 군청 소재지도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행정 지명을 바꾸었으니 고령 여행은 대가야의 자취를 따라가는 산책이다.

■팔만대장경은 어떻게 해인사까지 운반됐을까

고령 여행의 또 다른 줄기는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이다. 시작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구 달성군과 마주 보고 있는 개경포기념공원이다. 개경포는 개포나루, 개포진, 개산포, 가혜진 등으로도 불렸다. 과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해 대가야읍으로 들어올 때 가장 빠르고 쉬운 경로였다.


개경포라는 이름은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개포나루를 통해 옮긴 것에서 유래된다. S 자 모양으로 흐르는 낙동강 곡류 구간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해 해인사와 가까운 지점이다. 조선시대 한창 번창했을 무렵 개경포에는 세곡을 저장하는 창고와 함께 200여 채의 집과 30여 개의 객주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의 개경포공원은 시골 도로변의 한갓진 휴게소와 비슷하다. 주차장 외 편의시설이라고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판매하는 초가지붕 주막이 전부다.

눈길을 끄는 건 경판을 이고 진 남녀가 관원과 스님의 뒤를 따르는 석상 행렬이다. 한 장의 무게가 대략 3.25㎏, 전체 280톤에 이르는 목판을 이송했을 모습을 상상하면 이를 재현한 조각상은 오히려 수수하다.

고려는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려 강화에 대장도감 본사를, 진주에 분사를 설치하고 고종 23년(1236)부터 약 15년간 ‘초조고려대장경’을 바탕으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됐던 대장경은 조선 태조 때 해인사로 옮겨졌다. 남한강 수로를 거쳐 조령을 넘고 상주에서 낙동강을 타고 내려왔는지,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 하구에서 강을 거슬러 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정확한 시기와 경로에 대해 견해가 다양하지만, 이곳 개경포를 거쳐 해인사로 이운됐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개경포에서 해인사까지의 이운 경로도 불명확하기는 마찬가지, 현재 가능성이 있는 두 갈래로 이운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하나는 성주 가야산 자락 심원사를 거쳐 해인사로 넘어가는 ‘성찰의 길’이고, 또 하나는 고령 미숭산을 거쳐 합천으로 가는 ‘순례의 길’이다.

어느 길이나 대가야읍을 거쳐가는데 개경포에서 금산재를 넘는다. 해발 120m의 낮은 고개로 도로가 개설돼 있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구로 가는 주요 통로였으나 터널이 생기며 현재는 이용하는 차량이 많지 않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멀게는 가야산의 우람한 바위 능선이 아른거리고, 가까이는 대야가의 상징 지산동고분군이 손에 잡힐 듯하다.

금산재 아래에는 대가야수목원이 조성돼 있다. 수림이 울창하지 않지만 주차장이 넓고 탐방로가 잘 닦여 있어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수목원 초입의 ‘산림녹화기념숲’이라는 커다란 표석이 인상적이다. 1946년 사방사업을 지도하기 위해 출장 왔다가 금산재에서 차량이 전복돼 숨진 3명의 산림공무원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대가야수목원은 식민지 수탈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림을 푸르게 가꾼 업적을 기념하는 숲이다.

대가야 읍내를 우회해 미숭산 자락으로 접어들면 우륵박물관이 있다. 악성 우륵과 그가 창제한 가야금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이 위치한 쾌빈리는 우륵이 태어나고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자연 부락인 정정골은 가야금 소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박물관까지 지을 일인가 싶고, 그냥 둘러보면 전통 현악기를 나열해 놓은 공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전시관을 둘러볼 때는 꼭 상주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악기의 특성과 역사를 알고 실제 소리를 들으면 전통음악에 문외한이라도 충분히 흥미롭다.

박물관 위 중화저수지는 우륵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덱 산책로가 놓였고, 수면에 주변 산자락이 그림처럼 비친다. 이곳부터 미숭산자연휴양림까지는 산골마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점점 좁아지는 골짜기에 듬성듬성 마을이 자리 잡았고, 주변에 다랑논이 형성돼 있다.

미숭산(757m)은 고령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려말 정몽주의 편에 선 이미숭 장군이 이성계에 대항하다 순절해 상원산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바뀌었다 한다. 산 중턱에 조성된 자연휴양림 주변으로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휴양림에서 산 능선까지는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그 옛날 무거운 경판을 이고 지고 이 험한 길을 넘었으리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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