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채권 시장의 메시지

2018-07-0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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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시장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주식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중요한 시장이 있다. 채권 시장이 그것이다.

미국 내 주식 시장의 규모는 30조 달러로 미 연 GDP 18조 달러를 압도하지만 미국 채권 시장의 규모는 연방 국채 14조 달러, 모기지 9조 달러, 회사채 8억6,000만 달러, 지방 정부 공채 3억8,000만 달러 등 총 35조 달러에 달한다. 그나마 지난 9년 간 지속적인 주가 상승으로 주가 총액이 13조 달러나 늘어나 이 정도지 그 전에는 주식시장은 채권 시장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주식의 가치가 매일매일 달라지듯이 채권의 가치도 시시각각 변한다. 채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수익률이다. 채권의 가치가 올라가면 수익률은 하락하고 떨어지면 올라간다. 연방 정부가 액면가 1,000달러 연 3%의 국채를 발행했을 때 사람들이 향후 인플레나 경기를 감안해 이 정도면 좋은 금리라고 생각해 몰려들면 이 채권은 액면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리게 된다. 비싸게 주고 산 사람 입장에서 보면 실질 수익률은 3%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 채권 가치가 올라가면 자연스레 수익률은 낮아지게 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에 의해 수익률이 정해지는 것은 장기 채권의 경우다. 단기 채권의 경우는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이를 결정한다. 대부분의 경우 장기 채권의 수익률은 단기보다 높기 마련이다. 채권을 들고 있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험 부담은 커지며 사람들은 당연히 그 반대급부로 높은 수익을 원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단기 금리는 오르는데 장기 수익률은 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경기도 좋고 인플레 압력도 커 높은 금리를 요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기 둔화와 함께 인플레도 약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경우다. 이를 ‘수익률 곡선의 평준화’라고 부른다.

매우 어렵고 골치 아픈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나 투자가나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익률 곡선 평준화’는 향후 경기를 점치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FRB가 올 들어 기준 금리를 계속 올리면서 단기 금리는 상승하고 있지만 시장이 결정하는 장기 금리는 최근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2년 만기와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차이는 0.34% 포인트인데 이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07년 상황과 비슷하다.

때로는 수익률 곡선이 평준화되다 못해 역전되는 경우도 생긴다. 장기 채권 수익률이 단기 채권 수익률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60년간 이런 사태가 벌어진 후에는 거의 틀림없이 경기 침체가 왔다.

미국 경기 지표는 아직까지는 좋다. 실업률은 18년 내 최저고 기업 투자와 소비자 지출은 늘고 있으며 올 초까지 주식 시장은 최고치를 갱신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 장밋빛 수치에도 불구하고 불길한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9년 동안 중단 없는 전진을 계속해온 주식 시장은 올 들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가장 과대 평가돼 있음을 고려할 때 놀랄 일도 아니다.

시장이 작동하는 한 영원한 호황도 영원한 불황도 없다. 긴 호황은 과소비와 과투자를 불러 불황의 씨를 낳고 불황은 고통과 함께 거품을 걷어내 새로운 호황의 토대를 닦기 때문이다. 미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9년간 이어졌고 그 다음은 1982년부터 1990년까지 8년간 계속됐다. 미국 발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가 바닥을 친 2009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호황은 이미 9년을 넘겼다. 시기적으로 지금 끝나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트럼프는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캐나다와 멕시코, 유럽과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선포하며 “무역 전쟁은 좋은 것이며 이기기 쉬운 것”이란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캐나다와 유럽, 중국은 이에 맞서 보복 관세 부과를 천명하고 있는데 그렇게 될 경우 미 역사상 최장 기간의 호황을 누리며 지쳐가고 있는 미국 경제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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