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숙자 셸터, 투 트랙 전략 필요하다

2018-05-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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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셸터, 투 트랙 전략 필요하다
주말도 아닌 평일, LA 중심 대로에 한인들이 운집했다. 24일 오전 11시30분 동쪽으로는 버몬트, 서쪽으로는 웨스턴에 집결한 한인 2천여명이 윌셔 대로를 행진하며 노숙자 임시 셸터 설치에 대한 반대시위를 했다.

이달 초 LA 시정부가 한인타운 한복판, 버몬트와 7가의 시영 주차장을 임시 셸터 조성부지로 발표한 후 지난 4주 동안 한인사회는 4차례에 걸쳐 항의시위를 했다. 한인타운이 속한 10지구의 허브 웨슨 시의원실이 뒤늦게 배경 설명을 했지만 한인들은 아직도 왜 그곳이 노숙자 임시 셸터 부지로 최적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감정적으로 너무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 22일 LA 시의회 노숙자 관련 소위원회는 문제의 임시 셸터 조성안을 통과시켰다. 2~3주 후 시의회 본회의 심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인사회가 요구하는 결과가 얻어질 지는 미지수이다.


이번 노숙자 임시 셸터 설치와 관련한 LA 시정부의 결정과 집행은 한인사회로 볼 때 대단히 유감스럽다. 인생의 바닥으로 내몰린 노숙자들을 시민으로 존중하며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시정부의 의지를 한인사회는 백번 지지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똑같은 시민인 인근 학교 학생들과 지역주민, 상가 사업주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유감을 넘어 분노를 촉발했다.

한인들을 평일에 2,000명씩 집결시킨 요인은 분노이고 분노는 상당부분 장소 선정 및 발표가 느닷없고 일방적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관련 설명, 의견수렴, 설득이라는 기본적 절차 없는 일방적 통보 앞에서 한인사회의 분노는 정당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목소리가 한바탕의 분노 표출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한인커뮤니티 변호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법적대응 방안 모색, 임시 셸터 설치반대 온라인 청원운동은 계속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LA 시정부 차원에서 혹시라도 한인사회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겠다. 한인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필요한 것은 현실 직시이다. 소송도, 청원도 한인사회의 목소리 전달에는 도움이 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 노숙자 시설에 대한 각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대비, 주의회는 관련 셸터 건립에 관한 사전 공청회라는 적법 절차를 면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인사회는 현실에 기반한 차선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이번 임시 셸터는 3년 기한으로 운영되는 ‘징검다리 시설(Bridge Home)‘이다. 영구적 셸터가 아니다. 노숙자들에게 임시거처를 제공하고 이들이 보다 영구적 셸터로 옮겨가도록 돕는 시설이다. 노숙자들이 거리에서 야영을 해도 임시 거처를 제공하지 않는 한 텐트를 철거할 수 없는 것이 미국의 법이다. 임시 셸터가 생기면 인근 도로변의 텐트가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 플랜 B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10지구 시의원실에 대한 우리의 조건 요구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1년 단위로 시설 존속 여부를 재논의 할 것, 24시간 경찰순찰로 주변 안전을 보장할 것, 거리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시설 주변 조경에 신경 쓸 것, 불미스런 사고 발생 시 당장 시설을 철거할 것 등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한인사회의 치밀한 대처가 필요하다. 셸터 설치 강행에 대한 반대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한편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는 어떻게 대처할지 차선책을 강구하는, 투 트랙 전략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이다. 한인사회가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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