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D.I.Y.된 유전자 조작기술 인류에 핵폭탄급 위협 제기

2018-05-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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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과학자’·바이오해커 늘어 정교한 규제 필요

D.I.Y.된 유전자 조작기술 인류에 핵폭탄급 위협 제기

유전자가위 이미지 [서울대병원 제공=연합뉴스]

유전자 조작에 필요한 장비 가격이 싸지고 유전자 편집 기술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배울 수 있게 되면서 '시민 과학자'나 바이오해커에 의한 생물학적 참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전자 조작이 첨단 장비를 갖춘 연구실에서 흰 가운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하던 일에서 개인이 취미생활로도 할 수 있는 D.I.Y. 수준으로 바뀌면서 핵 폭탄에 맞먹는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5일(한국시간 기준) 시민 과학자나 바이오해커가 유전자 조작에 뛰어들면서 우발적 사고나 악의적 공격으로 인한 생물학적 참사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의 유전자 조작은 자신을 대상으로 근육을 강화하거나 헤르페스 치료법을 개발하려다 실패로 끝나는 등 아직은 초보단계에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악의를 가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생물 무기를 만드는 기술로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각국 정부의 규제와 감독은 기술발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 앨버타대학 연구팀이 멸종된 천연두와 마두(馬痘) 유사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동안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것도 그런 사례로 볼 수 있다. 알버타대 연구팀은 민간기업에서 10만달러를 주고 DNA 조각을 우편으로 구입한 뒤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해 6개월 만에 문제의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 미국질병예방통제예방센터(CDC)와 러시아 연구소에 각각 보관해온 지구상의 단 2개 남은 천연두균을 폐기할 것인지를 놓고 지난 10년여간 벌여온 논쟁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이 연구를 주도한 앨버타대 바이러스학자 데이비드 에번스는 캐나다 정부 당국에 천연두균 계획을 여러 차례 알렸지만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과학저널 'PLoS One'에 연구 과정을 공개하면서 당국의 규제를 피하는 방법까지 함께 싣기도 했다.

미국 당국도 유전자 혁신 기술을 억제하거나 지적재산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처를 하는데 주저하기는 마찬가지다. 생명공학 관련 규제는 지난 수십년간 급속한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낡은 틀을 갖고 첨단기술을 규제하는 상황이다. 여러 기관이 대충 꿰맞춘 시스템으로 규제를 하다 보니 구멍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연구는 낡은 틀이나마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민간분야 연구는 사실상 정부의 규제나 감독을 받지 않는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이 선의를 가진 '화이트햇(white hat)' 바이오해커를 이용해 의심스러운 활동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다. 존스 홉킨스 보건 보안센터의 토머스 잉글스비 소장은 "FBI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하지만 당신이 진짜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바이오해커 중 상당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다 바이오해커로 변신한 조시아 제이너가 차고에서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생중계 영상을 보고 바이오해커 세계로 빠져든다고 한다. '오딘'이라는 바이오해킹 기업까지 만들어 운영 중인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바이오해커 중에서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사고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으며 거의 통제가 불가능해 두렵다"고도 했다.

바이오해커는 온라인 쇼핑을 통해 유전자 조작 소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사이언스 익스체인지'라는 웹사이트는 온라인 벼룩시장인 '크레이그리스트'처럼 누구든 신용카드만 있으면 DNA 조각을 판매하는 기업과 연결해 주고 있다. 기술이 조금 더 진전되면 이들 기업 없이도 유전자 염기서열 AGTC를 조작해 찍어낼 수 있는 '지놈프린터'를 갖고 해결할 수 있는 시대도 열린다. 바이오해커가 유전자 조작에 사용하는 DNA 플레이그라운드는 아이패드보다 가격이 싸고, 오딘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159달러에 불과하다. 바이오해커가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유행성 인플루엔자 대비 담당 고문인 로런스 고스틴은 "지구에서 3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은 핵무기와 생물무기 두 가지밖에 없다"면서 "미국 연방정부는 핵무기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두려워하고 준비도 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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