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 1421원, 5개월만에 최고치
▶ 미와 관세협상 교착, 고관세·고환율
▶ 차·부품 2분기 2.7조 대미 관세 부담
▶ 포스코·현대제철은 올해 4000억원
▶ 불확실성 장기화 “1년 장사 망쳤다”
늪에 빠진 한미 관세 협상 여파로 우리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통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일부 기업들은 사실상 올해 1년 장사를 망쳤다고 하소연한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여름만 해도 낙관론과 경계론이 뒤섞였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대미 투자를 둘러싼 한미 관세 협상의 후속 협의가 난항에 빠지면서 우리 경제 곳곳은 후폭풍에 신음하고 있다. 10일 원·달러 환율은 1,420원 대로 5개월여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관세 협상 이후 미국 정부의 3,500억 달러(약 497조 2,100억 원) 규모 현금 투자 압박이 해소되지 않은 탓에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 격인 원화 가치가 고꾸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규모 양적 완화, 재정 지출 확대로 요약되는 '아베노믹스' 부활을 예고한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 선출 소식도 원화 약세 압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달러 대비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엔화의 대리 통화로 여겨지는 원화까지 동반 하락한 것이다.
대미 투자 협상이 꽉 막힌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은 단기간 해소되지 않을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미 투자 협상에서 우호적인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당분간 상방 압력이 우세해 1,400원대 등락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예상했다.
기업들은 이렇다 할 호재 없이 악재만 쏟아지는 경영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 등 우리 수출을 떠받치는 주력 산업은 미국과 유럽의 고관세 파고에 휘청이고 있다. 관세 협상 타결의 매듭을 짓지 못한 자동차는 4월부터 25% 관세를 물고 있는 처지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보다 10% 포인트나 높은 관세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기아는 관세 악재에도 불구하고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요에 힘입어 미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다만 하반기 들어 관세 영향이 본격화된 만큼 수익성이 줄어드는 건 피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분기(4~6월)에만 한국이 부담한 대미 자동차(부품) 수출 관세액은 19억 달러(약 2조7,000억 원)에 이른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 연구단장은 “미국과의 투자 협상은 이미 장기전에 들어선 것 같다”며 “이미 한미 양국이 합의한 15% 자동차 관세 이행을 미국 측에 요구하되 투자는 시간을 갖고 협상력을 발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부진의 늪을 걷던 철강도 산 넘어 산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수입산 철강에 대한 무관세 물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초과 물량에 기존 관세율의 두 배인 최대 50% 관세를 매기기로 결정했다. EU는 2024년 기준 44억8,000만 달러(약 6조3,000억 원) 규모의 철강을 내다 판 한국 철강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이미 한국 철강은 미국이 50% 관세를 부과하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태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양대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4,000억 원 규모의 대미 철강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통상 불확실성이란 트리플 악재는 기업들의 경쟁력과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전략 광물인 희토류 수출을 옥죄기로 하는 등 미중 무역 전쟁 틈새에 낀 현 상황도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철강과 석유화학 등 기존에도 글로벌 공급 과잉 탓에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 관련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며 “관세 회피 외에도 국내외 투자 간 균형을 조율하고 한국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근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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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름·오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