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0원대로 훌쩍, 고환율 비상
▶ 약달러 국면서 원화 유독 힘 못써
▶ 3500억불 대미 투자가 최대 변수
▶ 추가 상승 땐 외인 증시 이탈 우려
▶ 외환당국은 개입 없이 신중 모드
▶ “한미 간 합의 환율정책 영향” 해석

10일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10일 원/달러 환율은 미국 달러화 강세 등 추석 연휴 기간 주요 변수를 한꺼번에 소화하며 장 초반 급등했다. [연합]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 선을 훌쩍 넘어서면서 시장에서는 구조적 고환율 국면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금리 인하를 앞두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약세 환경이 조성되는 상황에서도 원화만 두드러지게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2일)보다 21.0원 오른 1,42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5월 2일 장중 1440.0원까지 오른 이후 5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8일 만에 다시 열린 외환시장은 추석 연휴 기간 쌓인 변수를 한꺼번에 반영했다. 프랑스에선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취임 한 달 만에 사임하면서 유로화가 약세 압력을 받았고,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당선되면서 엔화 가치가 4% 가까이 급락했다. 이에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99.4로, 2일 종가인 97.881보다는 높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달러인덱스가 100을 넘지 못하는 만큼 기본적으로 달러는 약세 국면이다. 올해 초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강달러 기조가 맞물린 당시 환율이 1,470원까지 치솟은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 격인 잠재성장률이 우하향하는 상황에서 한·미 관세 협상이 지지부진한 점이 맞물린 영향으로 해석한다. 특히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3,500억 달러 투자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대미 3,500억 달러 투자 계획은 재정·외환·민간 자금 동원 측면에서 모두 난제다”라며 “민간 자금을 대규모로 끌어올 경우 금리와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 부양을 이끌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 가능성도 커진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이익 전망치가 높아지고 있지만 환율이 부담 레벨까지 올라 외국인 수급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환율 변화에 따라 코스피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외환 당국은 현재로선 시장에 개입하는 대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까지 원·달러 환율 급등에 관한 별도의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한국은행도 이날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열었지만, 따로 언급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하자 정부가 구두 개입했던 사례와 대조적이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신중 모드’가 지난달 한미 재무 당국이 합의한 환율정책의 영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환율 조작 금지 원칙에 따라 매월 미국 측에 시장 안정 조치 내역을 공유하기로 했다. 현재 진행형인 대미 관세 협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관세 리스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기업이 고전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섣불리 입장을 취하긴 어려운 형국”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선 오는 29일 ‘2025 경주 APEC’을 계기로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한·미 정상회담을 주목하고 있다. 관세협상 결과에 따라 환율의 향방이 결정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1,400원을 완전히 돌파한 만큼 단기적으로 1,450원을 넘어 1,500원까지 열어둬야 한다”면서도 “한·미 정상회담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계기가 된다면 환율 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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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늘 기자>